전북도청의 새마을기 ‘한반도기’로 바꾸자
전북도청의 새마을기 ‘한반도기’로 바꾸자
  • 은종삼
  • 승인 2019.12.16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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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 기념식 및 각종 행사 참석이나 여권 발급 등 민원으로 도청을 방문하는 일이 가끔 있다. 확 트인 정원에 부드러운 잔디와 화사한 꽃, 기품 있는 노송으로 조경이 잘 되어 도청의 위상을 한껏 드높여주고 있다. 태극기를 비롯하여 전북도기와 각 시·군기가 즐비하게 게양되어 있다. 가히 애국·애향의 전북도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시대에 걸맞지 않은 ‘새마을깃발’이 펄럭이고 있어 도청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다. 태극기를 중앙으로 좌우에 전북도기와 새마을기가 나란히 서 있다. 쓴웃음이 나온다. 낙후된 전북의 구태의연한 행정을 드러내 보이는 듯해서다. 감히 민간 사회단체 새마을깃발이 도청 태극기와 맞서다니. 이럴 수가? 서울 광화문 광장 주변 정부청사나 서울시청 등은 물론 다녀본 수도 서울 거리 어디에도 새마을깃발은 눈에 띠지 않는다. 전북도청처럼 또 다른 지역 광역자치단체 청사에도 새마을깃발이 걸려 있는지는 다 돌아보지 못해 모르겠다.

  1970년대 한국사회는 온통 새마을운동 물결로 출렁이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져 새벽잠을 깨웠고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한국을 빈곤국가의 설음에서 벗어나게 했다. 곧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의 주도로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주입시킨 관주도형 범국가적 범국민운동이었다. 따라서 공공기관 기업체 건물은 물론 마을 마을마다 새마을 깃발이 기세 등등 휘날렸다. 의무적 게양이었다.

  관공서는 새마을 전담 부서가 있었고 공직자는 몸을 사리며 꼼꼼히 새마을사업을 챙겼다. 새마을지도자가 앞장서서 초가지붕 걷어내고 스레트 올리기, 마을길 넓히기, 퇴비증산 경진대회 등등 일사분란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국민은 이에 절대 순종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새마을교육 담당 주임교사가 매우 권위적이었다. 마을 청소, 폐품수집, 쥐잡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 북한도 이미 김일성이가 천리마운동을 하고 있었던 터다. 마침내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의 3선 개헌 후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시켰고 1972년 유신헌법 통과로 아예 영구집권 독재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빈곤타파 국민운동인 새마을운동의 민낯이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의 유신 독재체재는 종언을 고했다. 이후 새마을운동도 동시에 기세가 꺾였고 민간단체로 되면서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동생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의 수십억 대 부정사건이 불거져 새마을운동은 그 위상이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새마을기 게양은 유신정권 잔재라고 지적하고 의무조항이 사라졌다. 새마을기의 ‘새마을’ 흰 글씨는 박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과연 이 민주화시대 유신 독재의 상징 새마을기를 도청에서 휘날리게 할 필요가 있는가. 지난 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북단일 팀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입장하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새마을기를 내리고 한반도 평화와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한반도기’를 게양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은종삼 / 전) 고등학교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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