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나이 들어가는 방법
여자가 나이 들어가는 방법
  • 이윤애
  • 승인 2019.12.15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할머니의 매력에 푹 빠졌다. 1860년에 태어나 100년을 늘 새로운 하루처럼 살았던 모지스(Moses)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닭을 키우고 버터와 감자칩을 만들고 자수로 생활했던 그녀가 76세 때 평소 앓던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더 이상 실을 자수바늘에 꿸 수 없자 바늘 대신 붓을 들었다. 그녀는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으며 93세에 <타임>지 표지모델이 되었고 그녀의 100번 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는 등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16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왕성하게 활동한 인물이다.

 그녀의 그림은 퀼트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내가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가 도와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못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너무 늦었어’라고 하는데 사실은 ‘당신의 나이가 80이라 하더라도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힘을 준다. 활기 넘치는 활동과 장수의 비결에 대해 질문하자 ‘나잇값을 안 하면 된다’며 유쾌하게 응대한다.

 다음은 여성노인들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멋진 프로젝트 ‘바바야가의 집(La Maison des babayagas)’을 완성한 프랑스 할머니 테레즈 클레르(Therese Clerc)이다.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 목수정씨는 86세의 매력적인 그녀에게 차마 ‘할머니’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으며 눈부시게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고 회고했다. ‘바바야가’는 평생을 사회운동가로 살아오던 그녀가 홀로 된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내지 않고 가까이 살며 돌보다가 보내드리고 돌아서던 길에 구상한 프로젝트이다. 늙어가면서도 사회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세상과 나누며, 입주자들은 건물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젊은이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사는 노년 여성들의 생활공동체를 꿈꾸었다.

 여성노인들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국가와 자치단체 지원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늙어가지 않는 다는 점을 간파하고 관계자들을 설득하였다. 여성들은 수평적 질서와 상호부조, 연대와 공동체에 쉽게 적응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데 익숙해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거주하는 한 독립과 자치, 연대의 이상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간절하게 상상력을 가동시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2013년 마침내 10년 만에 ‘바바야가의 집’은 완성되었다.

 여자에게 나이는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 살 더 먹어야하는 즐거움보다 늘어나는 주름살과 신체기능의 변화에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사회적 차별에서 가장 크게 작동되는 요인 중 하나는 여자의 ‘나이 듦’이다. 여자에게 용모단정이란 오로지 젊음과 외모 뿐 인 우리 사회 판단기준에 반해 모지스는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이었고 테레즈는 86세에 ‘눈부시게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몇 년 전 김난도교수가 ‘트렌드 코리아’에서 Urban-granny(멋쟁이 도시할머니)로 새로운 시니어 아이콘인 한국형 할머니 모습을 분석해냈다. 트롯가수에 열광하는 공연계의 팬덤 주도세력이고 아웃도어나 명품시장의 큰 손이며 손주들에게는 세련된 할머니의 모습으로 정의되었다. 주로 소비시장의 대상으로서만 주목받았지 모지스나 테레즈처럼 주체적이고 사회적 할머니의 모습으로 각광받지는 못했다. 사회적 문제에 민감성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할머니, 예를 들어 내 손주 키우느라 허리 꼬부라지는 할머니보다는 동네손주들 돌봄체계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할머니가 더욱 멋지지 않을까?

 노년의 꿈이 한 가지 더 생겼다. 76세에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윤애 /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