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이익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 공존공영(共存共榮)
눈앞의 이익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 공존공영(共存共榮)
  • 김동근
  • 승인 2019.09.17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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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람이 창업에 도전하지만,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기업의 80%가 창업한 지 30년이 못 돼 사라진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퇴직 후 소자본 창업에 나선 자영업자 중 우리나라 창업기업 주기별 생존 현황을 살펴보면, 1년 생존율은 63%이지만, 3년 생존율은 39%로 뚝 떨어지고, 5년 동안 생존한 기업은 27.5%에 불과해 72%가 5년 내 폐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가 발간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at a Glance)’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창업기업 3년 생존율은 75.2%, 60.4%, 54.4%, 52.6%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창업기업 5년 생존율도 각각 62.6%, 50%, 52.6%, 51%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5년도 어려운데 100년은 어떨까?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른 기업과 다른 특별한 비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산그룹(1896년 창업)이 100년이 넘은 대표적인 장수기업이다. 삼성은 이제 80년이 조금 넘었다. 이에 반해 일본에는 100년이 넘는 기업이 5만 곳에 이르고 무려 500년이 넘는 기업도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사회였다. 상업은 최하층이 하는 것이고 상업을 불로소득으로 여겼다. 이에 반해 일본은 유교를 실용적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사무라이들은 유교를 허학(虛學)이라고 무시하였고, 학자들을 중시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들이 자기 영역의 최고 권력자이긴 해도 착취는 생각할 수도 없는 분권사회(分權社會)였다. 우리나라의 조선은 사또, 관찰사를 하면 1-2년 내에 서울로 돌아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수탈과 착취가 가능했지만, 일본은 영주가 자신의 영지의 백성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수탈이나 착취를 하지 못했다. 대신 일본은 분권사회였기 때문에 가업, 장인정신을 중시했다. 상인의 이익을 노력의 대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유럽의 경우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의 사회과학자인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이 땅이 부(富)로 풍요로워진다면, 하느님의 선하심과 정의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빈곤과 결핍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욕되게 할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중세 카톨릭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 청교도의 청부(淸富)정신이 자본주의 발전의 씨앗이 되었다.

 두산 가문의 경우 창업주가 후손들에게 물려준 전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근면이고, 둘째는 인화(人和)다. 그래서 형제경영이 가능하다. 삼성은 올해가 창업 81주년이다. 80년 동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존’을 선택하였다. 공존은 삼성만이 외치는 기업이념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변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기업의 목적’이라는 성명에서 “이윤이나 주주가치 같은 가치를 넘어 고객과 납품업체, 지역사회 등에 대한 책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내놨다. 성명에는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과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보잉의 데니스 뮐렌버그,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등 181명 CEO가 서명했다. 이들이 이해당사자들 모두를 위한 근본적 책무를 강조하고 나선 까닭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함으로 인하여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 가치는 ‘공존공영(共存共榮)’이다. ‘공존공영(共存共榮)’이란 ‘공존 + 공영’이다. ‘공존’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뜻하고, ‘공영’은 “함께 번영”이라는 것을 뜻한다. ‘공존공영’은 우리말로 “함께 살고 함께 잘 된다”는 이야기다. “서로서로 잘 살고 잘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CEO들도 미국의 CEO들처럼 “개개 기업은 자신의 목적에 진력하면서도 이해당사자 모두를 위한 근본적인 책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인 납품업체에 좋은 파트너로서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하여야 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물적, 인적 자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든 한국인에게 봉사하는 경제를 촉진하는 것을 기업의 목적으로 재정의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에 대한 책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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