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영 장편소설 ‘낮잠’… 우정이라는 허울에 갇힌 인간의 욕망과 위선
한수영 장편소설 ‘낮잠’… 우정이라는 허울에 갇힌 인간의 욕망과 위선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7.24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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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감 있게 넘어가는 페이지가 마치 120분짜리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것처럼 쫄깃한 긴장감을 준다. 현실의 부조리, 인간의 욕망과 위선, 어두운 삶의 나이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 등을 주로 써온 한수영 소설가가 또 한 번의 문제작을 탈고했다.

 그의 다섯 번째 책 ‘낮잠(도서출판 강·1만4,000원)’은 한상오와 이현우, 계층과 신분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친구의 우정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위선, 민낯을 박진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매주 수요일 6교시, 2학년 7반 학우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의 풍경을 줌인 하면서 시작한다. 담임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가톨릭의 고해성사 형식에서 빌려온 것이다. 세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담임이 아멘이라는 말과 함께 숙제를 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학교 문제아인 한상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겠다는 고백을 한다. 그 고백에 이끌려 반장 이현우는 한상우에게 다가간다. 사실, 두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고백하고 싶지 않았던 큰 아픔이 있었다. 한상오에게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아버지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이현우에게는 끊임없이 체벌했던 갑부의 무서운 아버지가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모범생과 문제아의 우정은 아버지라는 연결 고리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학교 안팎의 사회적인 편견과 시선은 둘의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을 놔두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재회하게 된 두 사람. 성인이 된 한상오는 맨홀과 전신주를 오가면서 전화 케이블을 연결하는 기사로, 이현우는 수면의학 전문의로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면……우리 일에는 뭔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어. 맨홀이나 잠이나 어두운 세계인 것도 그렇고, 거기서 뭔가를 찾고 이어주고 해결하려는……뭐, 그런 것. 매력적이네.”

 이현우의 말마따나 두 사람의 삶은 닮아 보였다. 그렇게 서로의 술잔에 차오르는 술만큼, 둘은 그렇게 서로 떨어졌던 20여 년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간다. 둘 사이에 공통의 관심사나 화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의 경험이 서로 떨어지지 못하도록 묶어둔 것이다. 마치,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사슬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가라앉아 보이는 한상오에게 이현우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고등학교 때 했던 고백놀이를 해보자고.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던 고백놀이는 두 사람에게 점차 의미있는 일로 자리잡는다. 이현우는 고백놀이로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탕감받으려 하고, 한상오는 고백놀이를 통해 더욱 짙어진 우정,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소설 속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배치된 주변 인물을 통해 인간사, 이런 저런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연결구조는 촘촘하다 못해 치밀하다. 그래서인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어느날, 소설가는 “이상하게도 글을 쓸 때면 항상 소외된 곳, 어두운 곳, 낮은 곳으로 눈이간다”고 말했다. 그렇게 인간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꾸미지 않고 거침없이 담아낸 긴 호흡의 소설은 독자들이 인간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소설책을 덮고 낮잠을 즐길 시간이 되었다.

 한수영 소설가는 전북 임실 출생으로 2002년 단편소설 ‘나비’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장편소설 ‘공허의 1/4’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녀의 나무 핑궈리’, 장편소설 ‘공허의 1/4’, ‘플루토의 지붕’, ‘조의 두번째 지도’가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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