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책의 단면이 물감…이정웅 작가가 ‘책으로 그린 그림’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책의 단면이 물감…이정웅 작가가 ‘책으로 그린 그림’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6.2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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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는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풍경이 그의 화폭에 들어올 줄 알았다.

 이정웅 작가가 책을 재료로 작업하던 초창기에는 비정형의 구도와 생경한 기법 속에서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형상화했다. 이후에는 문인화나 화조화를 모티프로 동양적인 정신들을 담았고, 최근에는 도시 풍경을 드러내 보였다.

 이처럼 변화되는 그의 작품에 열광하다보니, 작가의 삶 가까이에 있는 그 풍경은 언제쯤 드러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니…. 수줍게 드러난 한옥마을의 익숙한 풍경이 더욱 반갑고 정겹다.

 이정웅 작가가 7월 3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책으로 그린 그림’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곧 바로 7월 14일까지 서울 금보성아트센터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작가는 책의 매력에 빠져 벌써 16년 째 책을 가지고 놀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책을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에게는 100년도 더 된 고서부터 현재까지의 수 백 권의 책이 있기 때문인데, 시간과 역사를 머금은 한 권, 한 권의 단면에 여러 가지 칼라를 마주하며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책의 단면이 물감이 되었다.

두 번째는 책에서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깃든 살아가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업은 책을 모으고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책 단면의 여러 가지 색감을 분류해 놓고, 캔버스에 표현하고자하는 대상을 먹과 모필로 밑그림을 그린 후 생생하게 연상되도록 책의 단면을 콜라주 한다. 제각기 다른 길이와 두께, 드문드문 비치는 색상, 종이의 재질, 오래되고 누렇게 빛바랜 종이의 상태들이 물감을 대신해 형상을 배열시키면서 다양한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쓰여지는 여러 권의 책들 중 한 권의 책 내용을 중간 중간을 끊어서 다른 책의 내용과 연결시킬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작업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인 셈이다.

 화면에 붙이고 남은 책은 물에 풀어 불려서 뒤죽박죽 종이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든 이야기를 뒤섞고 혼합해버린 뒤 작품의 여백을 채워 가는 것이다.

 이 작가는 “그동안 망설였던 여러 도시풍경 중 한옥마을 풍경을 몇 작품 수줍게 선보여 보았다. 그동안 표현해보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면서 “앞으로도 책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보이는 이야기와 보여지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계속 변화된 나 만의 책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전주, 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 31회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국제아트페어 마니프 우수작가상, 반영미술상, 전북청년미술상, 한무리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서양화 제1분과 이사이자 회원, 지붕전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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