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작가가 소리없이 꺼낸 남광주역의 마지막 풍경
김지연 작가가 소리없이 꺼낸 남광주역의 마지막 풍경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6.09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연 사진작가가 8월 18일까지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남광주역, 마지막 풍경’전을 발표한다.

 20년 전, 긴장과 열정으로 프레임에 담았던 ‘남광주역’작업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된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촬영한 것들이다.

 당시, 작가는 어느 지역신문 기사에서 곧 남광주역이 철거된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느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온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유일한 수단이 사진임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그 기사 한 조각에 모든 걸음을 집중하고, 남광주역을 찾아 그 마지막 모습을 소중하게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위치했던 옛 남광주역은 1930년 신광주역으로 출발해 1938년 남광주역으로 이름을 변경했고, 2000년에 폐역이 되었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화순, 남평, 효천역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남광주역 도깨비 시장에 팔러 나오는 할머니들의 짐보따리들로 기관실 난간까지 그득했던 그 마지막 기차가 사라져 간 것이다.

 당시 김지연 작가는 “느리고 정이 묻어나는 시간의 기적소리는 희미하나 그 흔적 하나 붙들고 묻는다”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작업노트에 적었다.

 작가가 구성하고 있는 남광주역의 풍경은 단지 그 당시의 실제적인 모습만이 아닌, 거대한 다큐멘터리를 구성하고 있다. 짐꾸러미를 든 할머니들의 모습을 일일이 포착하며 남광주역의 새벽을 이야기하고, 역무원의 호의적인 표정이나 역장의 못마땅한 표정 속에서 기차 덕분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인물들의 사진의 먼지를 털어내고, 오랜만에 전시장에 펼쳐놓으니 김 작가는 “당시의 인물들이 큰 활개짓하며 다시 만나게 되는 기분”이란다.

  전고필 지역문화진흥원 이사는 “사진은 온도계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체온이 화면 속에 앙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며 “작가는 모든 녹슬어 가고,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 담겨 있는 생애의 온도를 꺼내 차갑게 식어버리거나, 곧 숨을 거두려 하는 것들에게 그녀의 따스한 눈빛으로 체온을 높여준다”고 했다.

  이와 함께 김 작가는 사진 산문 ‘전라선(열화당·1만8,000원)’을 펴냈다.

  이미 눈치채고도 남겠지만, 김 작가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카메라로 기록해오는 일을 즐겼다. 앞서 출간된 ‘감자꽃(2017)’에서 녹색 지붕의 정미소, 글자가 떨어져 나간 간판의 이발소, 마을 복덩방 같은 근대상회 등 하찮게 여겨지는 근대문화의 징표들을 카메라 셔터로 재확인하면서 우리의 삶의 터전을 발견한 것이다.

 이번 산문의 중심이라고 할 ‘남광주역’은 전라선과는 다른 경전선이고 오히려 호남선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책 제목을 호남선이나 경전선이 아닌 ‘전라선’이라고 한 것은 전라도 와 열차가 결합된 이미지를 의도한 것이다.

 1부에서는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풍경과 이야기를 담았고, 2부에서는 김지연 특유의 관찰과 일상에 대한 사유가 돋보이는 글들을 묶었다. 이 책은 동시대의 역사인동시에 사진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본래의 기능을 잃고 쇠락해가는 역사의 순간에 닿았을 때 현재와 연결된 다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김미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