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의 만남
미래와의 만남
  • 박인선
  • 승인 2019.06.0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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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작품-고흐의 작품<별이 빛나는 밤에>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 만들었다.(중앙선데이 캡쳐)

 아침부터 빗방울이 시작되더니 서울에 다가도록 폭포수 같은 빗줄기가 연신 뿌려댔다. 몇 년 전 출장길의 경험이다. 내비게이션에 길 안내를 맡기고 목적지에서 불과 십여 킬로미터를 남겨둔 시점에서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돌고만 있었다. 도착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겼다. 기상관측 이래 수도권 지역의 강수량이 가장 많은 기록을 세웠던 날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무용지물이 된 날이었다. 출장 목적이 정부지원을 받아 과제를 수행하던 마지막 결과보고서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자칫 과제 수행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지원금을 반환해야 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날 대부분의 참여자들도 기상악화로 지연되는 일들이 발생하여 다행히 발표는 마쳤지만 하마터면 큰 손실이 발생할 뻔했다.

 내비게이션의 오작동으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청사진이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 것처럼 마냥 희망적이다. 그렇지만 첨단기기가 정상적으로 운용되었을 때의 기대감이다. 더러는 급발진 사고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자동차 엔진 운용이 컴퓨터로 제어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속도감 있게 세상이 변하다 보니 아날로그 시대는 먼 옛날이야기로만 들린다.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에는 100년 후에 출판할 책을 만들기 위해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심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4년부터 시작한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 도서관’이 2114년에 책의 출판을 위해 매년 한 명씩, 100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이렇게 심은 나무들을 이용해 책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터이다. 올해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국제부문상’을 받아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 한강씨가 네 번째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100년이라니 너무나 멀다. 오히려 멀기도 하지만 시간과 생각의 갭을 메꾸기가 버겁다. 사회발전의 속도와 변화를 가늠할 목적으로 타임캡슐을 활용한다. 기껏해야 30년이나 50년이다. 한 세기를 거슬러야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그래서 궁금하다. 디지털 문명으로 피로감이 예견될 무렵 아날로그적 접근이 만들어낸 프로젝터는 흥미롭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작가만의 작품은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만든 보자기에 꼭꼭 묶어 오슬로 도서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었다. 정확히 95년이 지난 2114년에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우리 시대에는 흔하게 보이는 종이책의 역사도 종말을 고할지 모른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들은 가문비나무를 심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말자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인간은 누구나 공평한 부분이 있다. 죽음이다. 그 즈음에 작가도 이렇게 글을 쓰는 필자도 어쩌면 지구 상에 남아있는 대부분이 사라졌을 때, 미래를 책임질 후세들에게 남긴 우리의 부채를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려고 했을까. 어렴풋이나마 그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폭력과의 단절, 때로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이중성, 모순투성이의 삶들이 비추어 진다. 그래서일까? 100년을 기다려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니, 100년 동안 가문비나무를 키워야 볼 수가 있다. 미래는 달콤하기보다는 인내하고 준비하는 자의 몫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글 = 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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