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 하현호 씨 “당시 광주상황 전주에 알리려 노력”
5·18 유공자 하현호 씨 “당시 광주상황 전주에 알리려 노력”
  • 양병웅 기자
  • 승인 2019.05.16 19: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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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주년 맞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5.18 국가유공자 하현호씨가 16일 5.18민중항쟁 사진전이 전시된 풍남문광장에서 그 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사진을 보고 있다.   최광복 기자
5.18 국가유공자 하현호씨가 16일 5.18민중항쟁 사진전이 전시된 풍남문광장에서 그 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사진을 보고 있다. 최광복 기자

“39년 전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먹먹합니다. 눈 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간 이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5·18 국가유공자 하현호(66) 씨는 아직도 당시의 아픔을 잊지 못한듯 긴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올해 광주 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16일 전주시 풍남문광장에 마련된 5·18 민중항쟁 사진전에서 만난 하씨는 전시돼 있던 당시의 사진 한장 한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김제에서 함께 야학을 운영하던 10여 명의 선생님들과 광주로 내려갔다”면서 “비상계엄으로 인해 신군부의 병력이 광주 전역에 배치됐다는 사실을 전주 시민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씨는 “당시 타 지역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몰랐을 것”이라며 “이미 언론이 통제된 마당에 이를 전국화시켜야 겠다는 마음가짐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하씨는 “하지만 광주 일대가 포위됐다는 소식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당시 순창을 통해 전주로 넘어온 김현장 씨로부터 광주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유인물을 건네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었고 보는 눈이 많아 낮에는 활동이 불가능했다”면서 “선생님들과 늦은 밤, 새벽을 틈타 전주시내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유인물을 뿌렸다”고 덧붙였다.

 또한 “우편함에 넣어놓으면 적발될까봐 담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 던지기도 했다”며 “우리가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돌린 유인물만 해도 몇만장은 족히 될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국 고등학교 중 유일하게 전주신흥고가 시위에 참여하도록 뒤에서 지원하며 일종의 배후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학생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신군부의 만행에 맞서 일제히 뛰어나왔다”며 “그러나 교사들이 학생들을 말렸고 어떻게 알았지 교문 밖에는 이미 장갑차와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그저 학생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못나가게 막았다”며 “학생들이 죽으러 나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그는 5월 27일 전주경찰서(현 전주완산경찰서)에 연행됐고 지하로 끌려간 그는 보름 가까이 욕설과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그는 “기절하면 물을 뿌리고 깨어나면 또 때리고 고문이 끝이 없었다”며 “덕분에 이빨과 무릎, 어깨 등 온몸에 성한데가 한 곳도 없다”고 씁쓸해했다.

 하씨는 “5·18에 대한 망언이 쏟아질 때마다 아직도 그날의 항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며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진상규명이 되고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이다.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하씨는 “5·18 유공자를 급수에 나눠 선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급수가 1∼12급, 기타, 무급까지 있지만 기타나 무급의 경우 말만 유공자지 혜택이 전혀없다”면서 5.18 유공자 예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개선책 마련도 촉구했다.

 이어 그는 “아마 도내에 있는 5·18 유공자들의 90%는 아마 기타와 무급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민주화 유공자들이 마땅한 대우를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하씨는 “일부 시민들은 5·18 유공자들이 연금을 받는다는 등 다른 유공자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실제로 누리는 혜택은 거의 없는 만큼 유공자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병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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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생 2019-05-17 13:33:18
당시 우리 전북대학교를 점령하고 광주 전대와 조대를 간 계엄군들 이놈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이세종 열사가 첫 5.18 희생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