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의 차 도구 예찬
효명세자의 차 도구 예찬
  • 이창숙
  • 승인 2019.03.1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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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8>

 인공지능시대에 옛것과 마주한다는 것, 그것을 통해 그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끔 선인들의 차에 대한 시와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때는 바쁜 세상살이에 한 숨돌리는 묘약의 역할과 일상의 여유를 추구하고 쉬어가는 방편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삶이 있어 오늘이 있으니 또한 내일도 있을 터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아버지 순조(1790~1834)의 기대 속에 자란 효명세자(1809~1830)의 마음을 살펴보자. 그는 19세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맡는다. 왕권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제도를 정비하는 등 다양한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기며 위민정책을 펼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후에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1827~1849)이 즉위한 뒤 왕으로 추존되어 익종(翼宗)이라 불린다.

  효명세자의 짧은 생애 동안 지은 시중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다구(茶具)와 관련된 짧은 시가 있다. 차 도구인 다관·찻잔·차호·차에 대해 각각 읊었다.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효명의 눈에는 각각의 쓰임새에 맞는 도구와 차가 참으로 사랑스러웠던 모양이다.

 

 다관(茶罐)

 돌화로에 차를 말리고 쇠솥에 물을 끓여, 오래 달인 새 차에 게눈 거품 향기롭네.

 비교하자면 신선 동네 구기자 물과 같아, 한 잔으로도 만수무강 누릴 수 있지.

 

  찻잔(茶鍾)

 수정처럼 깨끗하고 옥처럼 맑은 한 잔, 살짝 떠서 차를 마시니 담박한 향기 일고.

 크고 작은 종지가 모두 훌륭한 작품이니, 누군가 아끼던 옛 다기던가.

 

  차 항아리(茶壺)

 옥을 깍고 금을 새겨 기법이 정교하니, 모난 다호 둥근 다호 저마다 영롱하네.

 어여뻐라, 다호가 차를 사랑하니 벽유차와 황아차를 가득 담았네.

 

  차(茶)

 솔바람 눈 내리는 소리 쇠솥에 시끄럽더니, 게눈 거품 일어나 주발 가득 향기롭네.

 가령 신선들이 이 맛을 알았더라면, 노자가 어이 구하(九霞)의 술잔을 마셨으랴.

 

  효명은 차의 맛을 신선이 마시는 영약에 비유, 평상시 차를 즐겨 마셔 그 효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차를 달일 때 게눈 모양의 거품이 일어 향기로움을 더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병차(餠茶)를 즐겼던 것 같다. 병차는 제조된 찻잎을 틀에 눌러 둥근 떡 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들어진 형태이다. 마실 때는 이것을 연에 갈아 끓는 물에 넣어 달여 마신다. 당시 병차를 담아두는 차호(차 항아리)의 모양 또한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가를 상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차호에 가득 담긴 병차가 뿌듯했던 모양이다. ‘구하’는 서왕모가 마셨다는 신선주가 담긴 술잔으로 차 맛이 신선주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효명세자는 아름다운 찻잔에 담긴 맑은 차 한 잔이 노자의 신선주에 비교될 만큼 차에 대한 애호가 남달랐던 듯하다.

  익종(翼宗)의 시문집인 『경헌집』 「송단팽다(松檀烹茶)」에 이런 글이 있다. “육우가 『다경』을 지을 때 온갖 모양과 색, 향기와 맛 그리고 다구와 달이는 법에 대해 품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차를 달이는 경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차에 담긴 운치를 드러내지 못함이다. 이제 송단에서 차를 달임에 『다경』에서 빠뜨렸던 운치를 온전히 할 수 있겠다.”라는 내용이다. 그의 시와 글을 볼 때 효명세자는 차의 전문서인 당나라 때 육우(陸羽, 733년~ 804년)가 쓴 『다경』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 도구와 차의 조화로움, 옛사람들은 ‘차 마시기 좋을 때’를 마음이 번잡하여 세상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라 하였다. 이는 옛사람만의 마음은 아닌 듯하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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