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운동, 전북에서 다시 일으키자”
“수묵화운동, 전북에서 다시 일으키자”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2.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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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묵의 주축 이철량·김호석 한 목소리
1980년대 수묵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이철량 작가와 김호석 작가가 스승 남천 송수남의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미진 기자)

 항일 운동가 집안의 후예인 김호석 작가가 오랜만에 고향 나들이에 나서 스승, 선배와 조우해 눈길을 끌었다.

 누벨백미술관(관장 최영희)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현대수묵 3인전’에 참여해 1980년대에 있었던 수묵화운동이 경계를 너머, 2019년에도 다시 불붙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27일 전시 개막에 앞서 만난 김호석 작가는 “전통의 가치를 자각하자고 외친 수묵화운동을 2019년에 다시 전북에서 일으키자”고 강조했다.

 지난 1980년대 있었던 수묵화운동은 한국미술 역사상 최초의 미술계 집단운동으로 평가된다. 이 수묵화운동은 관념화된 우리 전통회화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전통적인 산수화나 문인화의 박제된 관념화에서 탈피하고 수묵 본연의 가치와 표현 형식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1981년 동산방화랑에서 기획된 수묵화4인전이 있었는데, 당시 홍익대 교수였던 남천 송수남(1938~2013)과 제자들인 이철량, 김호석, 신산옥이 참여했다. 신 작가를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수묵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3명이 전북출신이었던 것이다.

 김호석 작가는 “불의 성질인 먹과 물이 만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곧 이질적이고 상대적인 사이의 조화를 의미한다”면서 “먹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수묵화의 정신이며,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수묵화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현실과 역사에서 삶이 빠진 운동은 의미가 없듯, 정신적 요체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며 “형식과 겉치레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수묵화에는 자기반성과 자기절제가 있어야 한다” 덧붙였다.

 그가 이러한 철학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이유가 있다. 김 작가는 정읍 칠보 유학자 집안의 후예로, 근대로 이어지면서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집안 내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고조부인 김영상 열사 일제의 강제합병에 반대하였고 옥중에서 투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올곧은 민족자주정신과 항일 의지는 후에 그의 작품 세계 형성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도 남았다.

 실제, 그의 작품은 ‘뜻 그림’이라는 한국화의 올곧은 가치가 투영돼 있다. 시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바람등목을 하는 며느리의 모습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을 떠나 서로의 간극을 없애고자 하는,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정신이 표현돼 있다. 또 2장의 종이에 선비의 모습을 나란히 그렸으나, 한 장의 그림에는 도끼 자국만 있을 뿐 선비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은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은 그 뜻까지 죽일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작가는 “혁명의 땅이자 풍류를 현실화 시킨 땅, 시서화와 삶이 일치한 선비의 땅인 전북이 수묵화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면서 “삶이 비켜나있는 공허한 그림 말고, 삶이 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수묵정신, 그 시대정신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가 이렇게 전북에서 다시금 수묵화운동을 주창할 수 있었던데는, 선배인 이철량 전북대 명예교수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1980년대 스승인 남천이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전시를 열어 수묵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면, 선배인 이철량 교수는 전북을 지키며 후학을 양성하고 수묵이 나아가야할 길을 묵묵히 보여주었다.

 이철량 교수도 ‘2019 수묵화운동’을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가 싫지 않은 눈치다. 아니, 이보다 앞서 수묵화운동의 중요성을 다각도로 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교수는 “당시 홍대에서 수많은 미술가들이 배출됐음에도, 수묵화4인전에 전북의 작가가 중심이돼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면서 “한 시대의 이야기로만 끝내기보다는 계기가 된다면, 뿌리가 있는 전라북도에서 당시 수묵화운동의 의미를 동시대의 상황에 맞춰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 이를 테면, 그림이 팔리는 척도로 작가를 줄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 늦기 전에 이 시대에 맞는 근본적인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되찾아보자는 의미는 시기적으로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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