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소
내 삶의 주소
  • 김동수
  • 승인 2019.02.14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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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무엇일까? 보람일까? 허망일까? 아님 하나의 추억, 그것도 아니면 회한(悔恨)일까?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삶의 끝은 죽음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은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았더니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된다니 참으로 허망하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의 주소, 곧 생(生)과 사(死) 두 쪽이 하나로 합치되는 삶의 답(答)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죽음일까?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동안 아직 살아 있기에, 그럼 과거일까? 그것도 아니다. 이미 지나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돌아오지도 않은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 속에서 삶의 답(答)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놓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우리의 삶을 놓치게 된 셈이니, 순간순간 들랑거리는 ‘들숨과 날숨’ 그 한 호흡 속에 모든 인생의 답이 다 들어 있다고 보인다.

 길을 찾고/ 집을 찾아

 일생을 헤매고 다녔건만

 길이 곧 집이었고

 사람이 곧/ 하느님이었음을-

 들 쉬고 내 쉬는/ 들숨과 낼 숨

 그 찰나 속에

 길도/ 집도/ 결국

 다 들어 있었음을-

 - 김동수, 「한 호흡」 전문

 그토록 찾고 다니던 부처님도 절에 있던 게 아니었고, 그렇게 불러대던 하느님도 예배당 안에 따로 있던 게 아니었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내가 오늘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는 사람 하나하나가 곧 하느님이었고 부처님이었음을…, 한 세월 빙 둘러 살고 나서야 이제 돌이켜 보니, 지난날 그토록 힘들었던 방황의 세월 앞에 내가 나에게 스스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내가 찾던 길과 집, 곧 삶의 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now), 이 자리(here)가 훗날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밤이 되고 낮이 되니, 구름과 비가 어찌 따로 있고, 밤과 낮이 어찌 따로 있으리오? 그걸 잊은 채 ‘구름’을 버리고 ‘비’를 좇고, ‘밤’을 버린 채 ‘낮’만 좇아 한 세월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니 ‘그 어떤 날의 시작’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과정들이 모이고 쌓여, 어느 계기에 우연처럼 펼쳐진 필연의 결과물이다. 그러고 보니 삶의 열쇠는 결국 바로 ‘지금 이 자리’(now here)에 그 모든 답이 다 들어 있는 셈이다.

  고교 시절 영어 교재에 실렸던 ‘당신의 미래’란 단원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만든 그대로이다.(your future will be just what you make it)’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make) 있느냐에 따라 결국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시방 천지에/ 봄이 가득해도

  사슴을 좇는 사람들/ 산(山)을 스쳐

  그냥 지나가네.

  - 김동수, 「그냥 지나갑니다」 전문

 우리들은 흔히 ‘순간’을 놓치면서 ‘영원’을 잡으려 하고, 눈앞의 목표(사슴)을 좇느라 삶(산)의 진경들을 놓친 채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인생의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천지에 봄이 미만 하건만 눈이 멀어 그걸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란 그 사람과 더불어 선(善)을 행하는 일이기에, 진정 이 자리에 ‘길’이 있고 ‘집’이 있음을, 한 세월 허둥대다 이제 와 내 삶의 주소와 그 답(答)을 생각해 본다.

 김동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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