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택시 운전사
나는 한때 택시 운전사
  • 김차동
  • 승인 2019.01.16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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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때 택시 운전사였다. 30여 년 전,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골집을 떠나 유학까지 했던 나였다. 그래서 학비며 생활비를 버느라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택시 운전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택시 운전은 쏠쏠한 벌이가 되었다. 2달이 넘는 방학 기간에 열심히 벌면 다음 학기 등록금 준비에 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젊은 운전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회사에서도 단기 근무를 꺼리지 않고 받아주었다. 밤이면 조용한 거리를 홀로 드라이브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지금 내 운전 실력의 대부분은 당시에 갈고 닦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내 골목 골목은 물론이고 인근 도시들의 간선도로쯤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이때 학습한 도로의 연결과 차량 흐름은 나중에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교통 상황을 안내할 때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청춘의 기억이기 때문인지 밤의 낭만이 뼈에 사무쳤던지 이후 나는 ‘택시 운전사’라는 단어에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진보신당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홍세화씨가 프랑스 망명 시절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그가 빠리에서 택시 운전사 시험을 보고 길을 물어가며 손님을 태우고 빠리의 택시 문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은 이채로우면서도 마치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듯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공통의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동질감, 연대의식이었을 것이다. 학연, 혈연, 지연은 없어도 직연(職緣)으로 맺어졌다고나 할까.

  같은 이유로 최근 택시 운전사들의 파업과 시위 소식에 남달리 마음이 쓰인다. 승차 공유(카풀)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차디찬 겨울에 또 한 명이 화마에 몸을 내던져 숨졌다. 승차 공유 서비스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공감한다. 내가 임시직 택시 운전사였던 시절, 나의 동료들은 종종 그들의 소박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녀를 고등학교, 대학교에 보내고 부모님의 칠순 잔치를 치르고 때로는 가족 여행도 가고 그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그들의 직업은 빛났다. 그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그렇다 한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였지만 그들의 직업에 성실했다. 물론 몇몇은 투박한 성격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입이 거친 이들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고자 했다. 그러니 ‘생존권 수호’를 외치는 그들 앞에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목도하게 된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기술이 진보하고 그에 따라 산업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미 실현되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승차 공유가 문제가 아니라 자율 자동차 주행을 대비해야 한다는 일갈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진보하는 기술에 더 가까운 이들은 이대로라면 미래 자동차 산업과 교통 산업 경쟁에서 한국이 한참 뒤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본다.

  ‘공유 경제’는 4차 산업 혁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다. 비단 자동차와 교통의 영역뿐 아니라 주거, 사무실, 생활용품, 의류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미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자원과 재화는 한정적이므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서는 ‘개인 소유’가 아닌 ‘공유’의 지혜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17년에 전년 대비 2배 성장했고, 중국은 2025년에 GDP의 20%까지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은 국내에서도 공유경제가 조사가 가능한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말하며 국내에서도 공유경제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표현했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변화가 잡아끄는 손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속화 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변화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산업적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빨리빨리’, ‘눈부신 성장’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뒤처진 만큼 속도를 올리기를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디 간들 어떠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와 타협이 중요하다. 택시 운전사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택시 운전사들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속도는 어느 정도로 조절하면 좋을 것인가. 산업 교체 과정에서 겪게 될 문제들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승차 공유 서비스를 둘러싼 사태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직업과 생활양식에 몰고 올 파문을 단편적으로 미리 보여주고 있다. 반발과 혼란은 수위를 달리하며 이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같은 갈등을 반복할 것인가. 경제와 민주,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은 이토록 어렵기만 하다.

 김차동 전주MBC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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