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마을의 힘
우정 마을의 힘
  • 진영란
  • 승인 2018.11.15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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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할아버지를 다시 살게 한 곳

 

“선생님! 선생님 집 짓는 데 언제 갈 거예요?”

“맞아요, 샘, 나들이 가요. 네?”

아침부터 아이들이 나들이 가자고 졸라댄다.

“선생님이 나들이 그냥 안 가는 거 알지?”

“알아요. 그림 그리라고 할 거잖아요.”

“그래, 그림 그릴 거면 가고, 아니면 안 갈 거야!” 마을 그리기 지도를 빨리 완성해야 했는데, 아이들이 제안까지 해 주고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티 안내고 이번에는 아이들의 다짐까지 받아내다니 집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그리기 도구 챙기자!” 눈치 빠른 재영이가 가방에 색연필과 도화지를 챙겨 넣으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다른 날 같으면 “거길 왜 가요? 다리 아파요. 지난주에도 갔잖아요!” 칭얼댈 아이들이 오늘은 손놀림이 재빠르다. 집을 짓는 것이 궁금한 것인지, 선생님이 어떤 집에 살게 될지가 궁금했는지 다들 발걸음이 날쌔다.

우정마을은 겨레네 동네다. 겨레는 우리가 출발을 하기도 전에 반절이나 가 있다. 발걸음이 일정한 것이 지난 시간에 했던 거리재기를 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멈춰선 겨레가 우리를 보고 외친다. “선생님! 학교에서 여기까지 400걸음이에요.” 겨레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겨레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열심히 거리를 재는 중이었던 것이다. 작년 같았으면 먼저 앞질러서 갔다고 야단을 쳤을텐데 겨레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나니 올해는 겨레와의 관계가 한결 수월하다. 한 가지 것을 깊게 파는 겨레 덕분에 거리 재기를 복습하면서 갔다.

 

아이들은 우정마을 정자에 짐을 풀고 우리 집을 짓는 곳에 몰려가더니 “선생님, 너무 어려워서 못 그리겠어요!”라며 빨리 포기를 한다. “그래? 어떡하지? 그럼 뭘 그릴까?” 아이들에게 공을 넘겼다. “지난 번에 안 그린 다른 집을 그리면 어때요?” 겨레네 마을에 있는 집, 그리고 그곳에 사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마을공부를 하려는 계획을 아이들이 알아서 실행해 준다. 각자 그리고 싶은 집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정자에는 나를 포함해서 4명만 남았다. 정자 앞 김월례 할머니가 사셨던 집을 그리고 난 후라 바로 옆에 있는 황토벽돌집을 그리기로 했다. 어제도 찾아 뵙고 인사드린 할머니인데 성함도 알지 못했다. 대충 스케치를 마치고 소민이네 엄마가 만들어주신 수수팥떡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대추를 씻고 계셨다. “할머니 이 마을에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말씀을 술술 해 주시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되는지 송구스럽기도 했다. 집처럼 단아하고, 정겨운 만남이었다.

정자에 남아있던 아이들과 우정마을 영화관으로 벽을 내어주신 윤영선 할아버지댁에 갔다.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 얼마나 사셨어요?” 라고 질문을 했다. “여기 산지는 얼마 안 돼요. 한 4년밖에 안 돼요. 내가 70먹던 해에 겁나게 아파서 병원에서 얼마 못 산다고 나가라고 해서 각시가 죽기전에 촌에나 한 번 살아보라고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이 마을이 딱 눈에 들어오드만요? 그려서 컨테이너 고쳐 살다가, 세동리 쓰러져가는 집 살다가, 지금 이 집을 사서 고쳐서 살기 시작했지요. 남들이 안 믿을랑가도 모르지만 내가 수술을 열 번이나 했소.”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살아오신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시는데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장난치던 아이들도 어느덧 귀기울여서 할아버지의 인생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정마을이 명당이었네요. 다시 이렇게 건강해지시다니 기적이네요. 정말 잘 하셨네요.”

“그런게요. 여기가 참 좋드만요. 근디 요새는 자꿈 숨이 차요. 나는 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소.” 그래서 병원에도 안 가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더 찡했다.

윤영선 할아버지 마당에서 가을볕을 받아서 꼬들꼬들 잘 마르고 있는 대추며 인삼, 콩, 고추를 둘러보고 나왔다.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해준 이 마을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안 보일때까지 마당에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이 따뜻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생각을 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겨레네 집에 가 보니, 몇몇은 마당에서 겨레네 집을 그리고 있고, 송현이는 겨레네 개 셋째를 그리고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고양이랑 노느라 겨레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린 것 다 가지고 와 봐.” ‘겨레네 집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 했었어야 했는데...’ 후회가 화가 되어 뿜어져 나왔다. 겨레, 지후, 서윤이의 노트가 깨끗하다. “ 학교에서 약속하고 나왔잖아!”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고, 어질러 놓은 집안을 정리하라고 야단을 쳤더니 미안함이 몰려온다. 마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만 하고 놀아도 흐뭇했었는데 무엇을 해 내야한다는 목표를 갖고 나서부터는 아이들을 채근하고, 못 마땅해 하고 있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 아이들과 마을에 있는 집들을 그린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다.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나니 아이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집 안에 들어가서 대충 정리를 하더니 그늘 하나 없는 겨레네 앞 마당에 모여 앉아서 열심히 겨레네 집을 그린다. “야, 학교가 이렇게 힘들어도 되냐? 나쁘지 않냐?”자기들끼리 학교 뒷담화를 하다가 “야, 그래도 우리 학교만큼 착한 데가 있는 줄 아냐?” 전주서 통학하는 재영이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갑자기 나쁜 선생이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얘들아, 덥지? 선생님이 사진 찍었으니까 교실에 가서 그리자.”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들어 가방을 정리하고 학교로 향했다. 소민이가 팔짱이 끼더니 “샘, 진달래 샘, 샘이 화나면 뭐 게요? 바로바로 진달래 화전!” “야, 화전이 얼마나 예쁜데? 그럼 난 화가 나도 예쁘다는 소리?” “에이, 무슨 소리에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화나고 부끄러웠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우정마을 영화관 담 집에 사시는 윤영선 할아버지가 글쎄!” 교실에 돌아와서 윤영선 할아버지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마을에 사는 겨레가 가장 집중해서 듣는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오셔서요. 우정마을에 사는 것이 정말 부럽다고 했어요!” 의기양양하다. “맞아. 우정마을은 정말 멋진 마을인 것 같아.” 윤영선 할아버지의 이웃이 된다는 것, 겨레네 마을 사람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학교가 있는 마을에 사는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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