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을 120서체로 쓴 서예가 심은 전정우
천자문을 120서체로 쓴 서예가 심은 전정우
  • 오광석
  • 승인 2018.11.0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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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전정우의 농필천자문 중 일부
심은 전정우의 농필천자문 중 일부

 

 6세기 중국 양나라 무제의 명을 받아 주흥사(周興嗣)가 만든 천자문(千字文)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제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250구의 1000자로 된 방대한 서사시이다.

 단 한글자도 반복되지 않으면서 우주 삼라만상을 엮어낸 천자문은 옛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자학습의 가장 기본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서예인들이 천자문구(句)를 가지고 간단한 작품들은 많이 하는 편이나 전체를 가지고 작품을 하는 서예인들은 많지가 않다.

 천자문은 1글자도 겹치지 않아 1000개의 글자를 완벽히 소화해서 쓰기란 전문 서예가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역사적으로도 당대의 최고의 서예가 1~2인에게 왕명을 내려 학습교재용으로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의 서예종주국인 한,중,일 3개국을 보면 중국 원(元)의 조맹부가 6체, 명(明)의 문진명(文徵明)이 4체, 당(唐)의 구양순(歐陽詢)이 3체의 천자문을 썼으며, 일본에서는 300여년 전에 구사가베 메이가구(日下部鳴鶴)가 3체를 썼고, 우리나라에서는 한석봉(韓石峰)이 2체의 천자문을 쓴 것으로 지금까지 기록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한 체도 쓰기 어렵다는 천자문을 현존하는 한국의 대표 서예가중의 한 명인 심은 전정우(沁隱 全正雨/1949~)선생이 천자문에 올인하여 2004년부터 2013년까지 9년에 걸쳐 무려 120서체로 6가지 크기 720종류라는 엄청난 천자문 작품을 완성하여 국내에서 2번, 중국과 일본에서 초대 전시를 하여 많은 감동과 큰 울림을 주게 되었다.

 한국 서예계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중앙일보, 인천광역시에서 공동 으로 주최하여 선생의 천자문 전시에 앞장섰고, 중국에서는 텐진(天津)시와 인천시가 공동으로 그의 전시를 열어 주었으며, 금년(2018년) 4월에는 일본의 유명 월간지 “서도계(書道界)”의 초대로 일본 도쿄에서 전시를 개최하여 크나큰 반향을 일으켜 한국서예의 위상과 국격을 높였다.

 심은 선생은 삼성그룹회장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몸에 밴 근면성실과 창의와 도전정신 그리고 타고난 서예의 천질(天質)과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으며, 서예의 한 길을 가고자 1986년에 직장에서 전격 사직하였고, 다음해에 동아미술제에서 최고상인 미술상을, 그리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는 등 39세에 한국서단에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이렇듯 한 길만 매진하게 된 선생은 1992년에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다음 1996년에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2004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세 번째 개인전은 앞서 두 번의 개인전과 달리 반서예(半書藝), 반회화(半繪畵)와 캔버스 작품 등으로 많은 변화를 추구하였다.

 세 번째 개인전이 끝나고 심은 선생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또 무엇을 보완해 나가면 좋은가?”라는 화두를 두고 고민 끝에 천자문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심은선생은 은대(殷代)의 갑골문자로부터 주대(周代)의 금문자(金文字)와 진(秦),한(漢),초(楚),위(魏),원(元),송(宋),당(唐) 등 중국의 역대 특이서체, 그리고 신라, 백제, 고구려 때의 서체 등을 참고하여 썼으며 왕희지, 안진경, 구양순, 회소, 장욱 등 중국의 명필가들의 필체는 물론 우리나라의 김생, 한석봉, 김정희 선생등의 필의(筆意) 등을 연구하여 수없이 많은 천자문을 쓴 끝에 드디어 2013년 1월 120서체 720종의 천자문을 완성하였으니 역대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금자탑을 쌓았다.

 120서체를 다 쓴 후 120서체를 하나로 나타낼 수는 없을까 하고 고심하다가 2013.1.11. 강화도 심은 미술관에서 9시간에 걸쳐 소주를 여러 병 마셔가면서 취한상태에서 붓을 들고 각종 서체와 필의를 섞어가면서 자유분방하게 천자문을 썼는데 이것이 심은 혼융체(混融體)의 대표작이자 백미인 농필천자문(弄筆千字文)이다.

 이 농필천자문은 종이규격 90*240cm의 화선지13매에 쓴 대형 천자문이다. 갑골문, 종정문에 해,행,초를 가미하고 전,예로 각체가 뒤섞이는 등 여러 서체가 한 작품에서 자유자재로 녹아 나왔으며 필획의 태세나 장단 또한 변화무쌍한데 이것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이목이 집중될 뿐 아니라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한 글자에서 뿐 아니라 한 문장에서도 여러 서체가 혼융되어 있어서 전문서예가라 하더라도 읽기 어려운 경지의 그야말로 법고창신의 새로운 혼융체 일명 심은체(沁隱體)가 탄생하였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옛날에는 천자문을 쓰고 나면 그대로 목판본으로 새겨서 원본글씨가 훼손되었는데 심은선생의 천자문 120서체 720종의 천자문은 귀중한 문화재로 기록될 것이며 또한 모든 서체를 아우르고 조화와 균제 그리고 화합을 이룬 선생의 혼융 농필천자문도 세계 서예역사상 큰 문화재로 기록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제 칠순을 넘긴 심은 전정우선생은 수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해야할지 고민이라고 하였다.

 대 서예가가 고민하지 않고 여생을 작품과 후학 양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이 아쉽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선생의 수 백 종의 천자문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 남겨야 할지를 이 시대의 국가와 지방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글= 원암 오광석(전북미협 서예분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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