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金九) 정신
백범 김구(金九) 정신
  • 이상윤 논설위원
  • 승인 2018.10.30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구 선생의 본명은 김창수(金昌洙)다.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한자가 다른 이름으로 두번이나 바꾸었는데 "金龜"로 그리고" 金九"로 바뀌어 불리어지고 있다.

▼ 호(號)는 백범(白凡)이다. 백범으로 정한 것은 비록 백정(白丁)등 범부(凡夫)라해도 애국심이 나 정도는 돼야 완전한 대한민국 독립국민이 된다는 뜻으로 나라사랑 정신이 깊게 배어있다. 백범은 19세때 동학 접주가 된다.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그 보복으로 일본 군장교를 살해한다.

▼ 살인혐의로 투옥된 백범은 당시 21세 약관의 나이였다. 백범은 23세 때 탈옥에 성공해서 만주로 건너가 민족교육사업에 나선다. 특히 항일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펼치다 일제에 붙잡혀 두번째로 투옥되었다. 이때 나이 36세였다. 1919년 44세 때 백범은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으로 발탁되었다. 백범은 한국애국단을 설립 많은 한국 청년들을 모아 애국정신과 항일운동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 일본 동경에서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 윤봉길 의사 등 젊은이들의 항일운동 도화선이 되었던 이봉창 의사와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제 전승을 기념하는 식장에서 연단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성들을 사상케 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윤봉길 의사 등 많은 열사들이 백범 선생이 창설, 배출한 한국애국단 출신들이다. 한국 광복군도 창설해 일본 관동군과 수차례 접전. 전과도 올렸으며 광복 후에는 조국 통일을 위해 한 몸을 던진 대한민국의 큰 스승이다.

▼ 조국을 짓밟은 일제의 총칼도 피해 온 백범은 동족한테 총격을 받고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지도자다. 상민출신이라해서 양반들의 멸시 속에 살았고 일제강점기 투옥과 망명으로 일생을 보내온 서민출신 백범은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우리 역사 속의 인물이다. 제73회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문대통령은 백범 김구선생을 "경찰 정신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정의롭고, 공정하고, 도덕이 지배하는 조국통일정신이 곧 김구 정신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