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줏대 있게 살기
문화, 줏대 있게 살기
  • 최정철
  • 승인 2018.10.08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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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색(色)을 두고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서 일상에 적용하여 살고 있다. 빨간색에는 정렬과 따뜻함, 파란색에는 희망과 차가움, 노란색에는 낙천과 영광, 분홍(핑크)색에는 로맨틱과 행복, 주황색에는 친근감과 변화, 갈색에는 안정과 지루함, 녹색에는 생명과 자연, 자주색에는 정의와 존엄, 보라색에는 우아함과 예민함, 검은색에는 은밀함과 불행, 흰색에는 순수와 결백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은 서양인의 인식이다. 그런데 우리네 인식도 그렇다. 8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중산층의 출현에 맞춰 현대화되면서 그렇게 되었지 않나 싶다.

 

 두 가지 상황을 놓고 살펴보자. 서양 사람들은 혼례 때 흰색 드레스를, 장례 때는 검은색 정장을 갖춘다. 한국에 사는 우리도 그렇게 한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흰색 드레스를 오매불망 원한다. 초상집에 가면 상주나 문상객이나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배우지 못한 집안으로 눈 흘김 당한다.

 동서양은 수천 년 동안 저마다의 문명과 문화를 누렸기에 같은 상황을 놓고도 아무래도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이 전통으로 내리받음 되어 온 바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같은 색을 놓고도 관점이 다를 것인지라 서양에서는 혼례 때 흰색을 따랐지만 우리 조상님들에게 있어서 흰색은 처량하고 쓸쓸한 색이었기에 일체 취하지 않았다. 우리 조상님들은 혼례 때 신랑에게는 푸른색(혹은 녹색)이 짙게 배긴 검은색의 흑단령에 사모관대를, 신부에게는 붉은 색이 주를 이룬 원삼을 입혔다. 조금 더 욕심을 낼 경우 신부는 같은 붉은색이나 금박까지 입혀 더 화려한 활옷을 입도록 했다. 검은색은 고려~조선시대 임금의 대례복(大禮服)인 면복(冕服)이 취하는 고귀한 색이요, 활옷은 원래 왕실 내명부인 공주 옹주의 대례복이다. 이것을 일반 서민들의 혼례 때는 쓸 수 있도록 왕실에서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네에게 있어서 길한 색은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부가 붉은색 옷을 취한 것은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고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얹은 까닭이다.

 흔히 한민족을 백의(白衣)민족이라고 한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잘못이다. 소의(素衣)민족으로 해야 맞다. 흰색 옷은 염색 혹은 탈색 등의 가공을 취한 옷이다. 소의도 같은 흰색 계통이지만 가공하지 않은 고유색이다. 즉 실의 원색대로 천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은 것이다. 흰색 계열이라 해도 주로 광목일 옷감 자체는 때가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백성들이 자연의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입고 산 것이다. 그것을 서양인의 관점으로 흰색 옷의 민족이라 부른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백성들 전원이 처량하고 쓸쓸한 색을 몸에 두르고 산 꼴이 된다. 가공한 흰색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묽은 흰색이다. 물론 그 역시 흰색이겠으나 아무렴은 우리 조상님들이 불편한 흰색을 일부러 가공비 들여가며 옷 색으로 골라 정했을까? 가난하다 보니 그저 자연에서 얻은 색 그대로 몸에 두른 것이다. 그리고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본 옷으로 삼아 겉에 컬러풀한 옷을 걸쳐 입었다.

 우리네에게 흰색은 쓸쓸한 색이었기에 예전의 초상집에서는 모두 소복(素服)을 입었다. 게다가 소복은 자연 그대로의 광목옷이었으니 망자가 자연으로 돌아감을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검은색은 길한 색이었음에도 요즘 초상집에서는 사람 죽은 것이 길한 것인지 죄다 검은색 옷을 입고 문상객을 받는다. 문상객 역시 흰색 옷에 흰색 넥타이가 아니라 죄다 검은색을 컨셉으로 삼아 문상을 가고. 이렇듯 기가 막힌 초상집 풍경이 언제부터 형성 되었는지 어느 의상 학자에게 물어봤더니 그 시점을 80년대 즈음으로 잡는다. 왜냐, 그 즈음부터 장례를 대행해주는 상조업체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조업체들이 서양 사람들 하는 것을 그대로 베껴 직원들로 하여금 전원 검은색 복식을 갖추게 했고 이것이 일반인들에게도 강요된 것이다. 어이없고 씁쓸한 얘기다.

 

 결혼식장의 흰색 드레스나 초상집의 검은색 정장은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 풍요로운 서양 문명을 동경하며 정신없이 추종했을 때 생겨난 풍경이라 할 것이다. 88서울올림픽 때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서울의 시내버스들 외면이 하루아침에 보라색으로 변한 것도 보라색에 우아함을 얹는 서양인들의 인식을 숭앙하느라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물론 혼례나 장례 때 무슨 색 옷을 입든 어떠랴? 색상 하나 잘못 선택했다고 경천동지할 일 없다. 각자 편하면 될 것이다. 다만, 남의 나라 문화를 생각 없이 추종하는 짓은 말아야 할 것이니, ‘줏대 좀 있게 살자’ 이것이다. 추종하지 않는, 줏대 있게 사는 것이 곧 문화다.

 /=최정철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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