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품은 꽃창살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美
세월을 품은 꽃창살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美
  • 채지영
  • 승인 2018.08.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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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作 花 꽃창살로부터(oil on canvas, 2018)
 꽃에는 정작 방년(芳年)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칼자국,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 아니겠나?/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입문이라/ 나도 고개 돌려 법당 마루에 오체투지하고 싶네만/ 마른 주둥이 훔치는 햇살 천년 바람 천년/ 법당 마당의 싸리비질 자국만 돋을 새김하고 있네/ 그렇다네, 이 문짝에 염화(拈華)없다면/ 어찌 어둔 법당에 미소(微笑) 있겟는가?/ 풍경소리며 목탁소리에도 나이테가 있는 법/ 날 쓰다듬고 가는 저 달빛 구름 그림자처럼/ 씨앗 쪽으로 잘 바래어 가시게나 <이정록_꽃살문>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정록 시인의 <꽃살문>으로 시작해봅니다. 여러분들은 내소사 아름다운 꽃살문을 보셨지요?

 한국 불교예술의 정수인 사찰의 꽃살문은 세계 어느 나라 건축물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종교의 가치를 넘어선 예술성이 깃든 조각품입니다. 특히나 내소사 대웅전의 솟을 연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각 솜씨가 정교하며 부성을 깨우치는 단계의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이승우 작가의 <花 꽃창살로부터>입니다. 작가는 내소사의 꽃무늬창살을 모티브로 오랜 기간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무채색의 화려하지 않은, 비바람을 견딘 세월의 흔적을 담은 꽃창살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면, 이번 작품은 과거 고려불교의 화려하고 최상의 장엄을 표현하는 화려한 꽃살문을 그렸습니다.

 작가는 고풍스런 문창살을 장인들이 땀을 흘려 새긴 노력만큼 붙이고, 떼고 칠하는 반복된 작업 속에 무의식 중 발현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선과 면의 자연스러운 조합 속에 미적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곧 70의 나이를 바라보는 작가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작품 속에 자신의 작가로서의 담백하고 순박한 삶의 자세를 투영하는 듯 합니다. 지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작업하시는 작가님을 응원하며 이번주 전시장에서 내소사에서 느끼는 꽃살문의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 글 = 채지영 교동미술관 학예사

  작품 = 이승우 作 花 꽃창살로부터(oil on canva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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