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훈몽재에서 붓으로 이념을 녹이다
순창 훈몽재에서 붓으로 이념을 녹이다
  • 오광석
  • 승인 2018.08.2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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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서울에서 내려온 서예가 2명과 순창군 쌍치면에 위치한 훈몽재를 찾았다. 이 곳에서 교류차원으로 들어와 숙식하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던 중국의 대학교수 및 대학생들과 지필묵을 가지고 필담도 나누고 즉석휘호도 하면서 즐겁게 하루를 즐기고 돌아왔다.

 순창 훈몽재는 조선 유학의 큰 별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선생이 1548년에 순창 점안촌 백방산에 강학당을 지어 훈몽재(訓蒙齋)라는 편액을 달고 송강 정철 등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그 자리에 2009년 순창군이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예절, 유학 등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중건하였다.

 실제로 방학때면 전국각지에서 예절, 유학 등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번에 문화교류행사의 일환으로 중국 남창대학과 호남과기학원에서 교수와 학생 총 35명이 8.21~8.28일까지 7박8일 일정으로 훈몽재를 찾아와 우리나라의 유학과 전통문화에 대해서 배우며 체험하고 돌아갔다.

 이번 방문은 작년에 이어 2회째를 맞는 행사로서 중국의 전통적인 유학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상당부분 훼손되어 정통 유학의 맥을 잇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학을 잘 간직하고 있는 훈몽재와 교류하여 중국유학의 뿌리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남창대학과 호남과기학원 일행은 훈몽재에 머무는 동안 김충호 산장과 유승훈 훈장으로부터 유학을 공부하고 다도체험과 선비 관련 가무(歌舞)와 음악 등을 체험하고 견학하였다.

 필자가 방문한 토요일 오후에 중국의 교수 학생들과 인근 유지들과 훈몽재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상태에서 판소리공연, 대금연주, 살풀이 등 우리나라의 전통 가무와 음악을 보여 주었다.

 행사가 끝난 후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7시부터 훈몽재 강학당에서 훈장이자 서예가인 유승훈과 서울에서 내려온 우공 신지훈, 인헌 최성열과 필자 그리고 중국 측의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서 필담도 나누고 즉석 휘호도 하면서 교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약주도 한잔씩 하면서 흥취가 나면 스스로 붓을 잡고 휘호를 하였으며 나중에는 학생들이 갖고자 하는 글귀들을 우리 측 서예가들에게 요청하여 즉석에서 휘호하여 주기도 하였다.

 중국 학생들에게 휘호해 주면서 기쁘고 짜릿했던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는 국가와 이념이 다르고 지역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데 써 달라고 하는 글귀를 보니 함께 통하였다.

 그 내용들을 보면 논어에 나오는 “넓게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라” 라는 “박학독지절문근사(博學篤志 切問近思)”,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 한다“라는 뜻의 “지자요수인자요산(知者樂水仁者樂山)”,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뜻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也)”, 이백의 장진주에 나오는 “인생득의수진환(人生得意須盡歡)”, 그 외 “아생위학(我生爲學)”과 “담박명지(澹泊明志)” 등 서로 충분히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들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밤 9시까지 휘호하면서 서로 필담을 나누고 흥겹게 술잔을 주고받는 가운데 마음이 통하였다. 이 날 만큼은 사드보복이나 이념적인 갈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글 = 원암 오광석(전라북도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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