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기피하는 사회, 이대로 두고 볼 건가
노동을 기피하는 사회, 이대로 두고 볼 건가
  • 송일섭
  • 승인 2018.08.1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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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 천정의 석면해체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필자는 진풍경을 목격했다. 아담한 정원학교인 우리 학교가 한 순간에 외국의 어느 공사 현장처럼 느껴졌다. 스무 명 이상의 인부들이 작업에 참여하였는데,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우즈베키스탄과 태국, 베트남, 터키 등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몇 해 전의 일이 떠올랐다. 칠연계곡(七淵溪谷)으로 유명한 무주 안성의 전라북도자연환경연수원에서 연수 받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계곡 아래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참 내려오니 농촌마을이 보였다. 그런데 그 새벽 시간에 마을회관 앞 도로에 동남아인들로 보이는 외국인 서너 명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필자는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들을 자세히 살피기로 했다. 허름한 차림새로 보아 칠연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늘진 숲과 시원한 계곡을 찾아온 피서객도 아니었다. 얼마 후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봉고차 한 대가 그들 앞에 섰다. 그들이 익숙하게 차문을 열고 올라타자 봉고차는 어디론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아났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저 아래 농장에서 품을 파는 일꾼들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연고로 거기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일손이 없는 농산어촌에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석면해체 공사를 하면서 또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게 된 것이다. 기껏해야 작업반장 한 사람을 빼고, 모두 외국인 노동자인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어렵고 힘든 일은 모두 외국인들이 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다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도시와 농산어촌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외국인들만 점점 늘어나고 있을까.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그릇된 노동관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짓거나 노동현장의 일꾼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은 거의 없다. 부모들도 자신들은 어떤 고생이라도 감수하면서도 자식만은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한다고 자식들을 다그쳤다. 부모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제법 손님이 많은 시골의 어느 순대국밥 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도 외국인이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함으로써 노동력이 절대 부족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외국인을 쓰는 것이 인건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우선 당장의 이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업주로서는 최선의 선택임에 틀림없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2018년 대비 10.9% 상승한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발표되자 소상공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임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였지만, 바닥 경제가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상공인들의 부담만 높였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은 여전히 낮은 편이고, 어렵고 힘든 육체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아니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노동만으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을 시키겠느냐며 자탄에 빠지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치하는 것은 임시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와 그 대가의 공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수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존적 욕구는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외국인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정부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데도 평생 동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여건이라면 누가 노동을 신성하다 하겠는가.

그래서 국민 모두가 대학을 나와야 하고, 공무원이나 사무원이 되기 위해 학원주변을 서성거려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생산적인 상황 아닌가. 노동을 하더라도 꾸준히 하면 생계에 지장이 없을 만큼, 자식도 대학도 보내고 휴가도 즐길 만큼 임금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가난한 젊은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고 꿈을 키워갈 수 있을 만큼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최저임금 만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시들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타고난 복(福)이라며 떵떵거리는 삶의 구조, 어찌 이것을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도 공무원도 회사원도 모두 일하는 시간만큼 대우 받는, 그래서 누구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은 요원한 것인가.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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