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 출간
김경숙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 출간
  • 김영호 기자
  • 승인 2018.08.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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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곳에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비는 그쳤다. 물결이 칠 때마다 노파의 옷은 꽃잎처럼 팔랑거렸다. 알록달록한 옷은 피로 물들인 것처럼 붉었다. 여러 날 검던 하늘이 붉은 태양 빛으로 변해 개울물은 주황색 물감 같았다. 개울물은 빛을 받아 흘렀다. 작은 쪽배 같은 슬리퍼 한 짝이 생솔가지에 걸려 있었다. 또 한 짝의 슬리퍼는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노파의 손엔 찰무리떡과 몰아 쥔 생솔가지가 한 움큼 쥐어 있었지만, 경찰은 자살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진흙에 파묻혀 있던 신발 한 짝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경찰차와 구급차는 노파를 싣고 멀어져갔다. 한적한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소설 ‘아무도 없는 곳에’ 중에서.

 전북 순창 출신의 김경숙 소설가가 자신의 첫 작품집이자 소설집인 ‘아무도 없는 곳에’(삶창·1만 1,000원)를 펴냈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국내 문학에 새로운 리얼리스트가 등장했음을 알린 김경숙 소설가는, 작품 속에서 하나같이 사회가 방치한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5년 5·18문학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소설 ‘아무도 없는 곳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구도를 통해서 1980년 5월이 남긴 아픔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음을 인상 깊게 그려내고 있다.

 그 가운데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려는 존재는 여성인 ‘노파’인데, 노파의 죽음은 사회적인 존재감이 없다.

 왜냐면, 마을은 넓고 좋은 경치에 자리잡고 사는 낯선 사람들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처럼 소설집에 수록된 편편의 작품들 속에서 굳이 행복한 결말을 추구하려 들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현실을 냉혹하게 그리면서, 진실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김경숙 소설집에 해설을 쓴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김경숙은 현실의 고난과 고통을 회피하고 성급하게 희망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경숙 작가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서술 방식으로, 일상적 현실에다 환상적인 요소를 뒤섞어 새로운 세계를 엮어보이는 데 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개다리소반’이다.

 “소반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듯 다양한 연장들이 필요한데 도시는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깨끗해지고 편리해진다. 흙길은 콘크리트 회색 도로가 되고 낮은 집들은 벌집처럼 한 기둥 안에 모여 산다. 백오십 년 동안 소반의 역사를 이어온 내 공방 때문에 비만 오면 저지대라 참사가 난다나. 150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리 없는데 나는 물에 쓸려 죽지도, 물에 잠긴 적도 없다. 철거 핑계치고 얼토당토않다. 나는 가슴으로 외친다. 우회하라. 우회하라. 도로를 우회하여 길을 터라.”- 소설 ‘개다리소반’ 중에서.

 소설 ‘개다리소반’에는 작곡가의 영혼이 떠나고 나자 위안이 찾아올지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의 어룽진 눈 속으로 자개 빛을 한 나비가 날아든다.

 주인공은 나비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날이 점점 밝아오고 멀리서 굴착기 다가오는 소리가 그들의 부르는 노래를 삼켜버린다.

 이렇듯 이 작품은 주술과 현실, 초월과 내재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고 상층적인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과 불가해한 운명 등 인간의 삶의 총체성을 드러내 보이는 데 집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경숙 소설가는 “내가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문학 강좌를 듣고 나서부터였다”며, “그날 이후 매일 도서관으로 갔고 많은 책에 취해 이제 글을 쓰려 한다”고 밝혔다.

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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