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보다 시스템으로
슬로건보다 시스템으로
  • 김동원
  • 승인 2018.07.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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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일, 갑자기 내린 비로 동굴 속에서 열흘간 실종되었던 태국의 치앙라이 지역의 유소년 축구팀 소년 13명(코치 포함)이 안전하게 동굴 내의 한 지역에 갇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동굴 안에는 곳곳에 최고 수심 5m의 물이 차있었고, 마침 우기가 시작되어서 구출하는 데는 4개월 정도 걸릴 것이란 소식이 돌았다. 그러나 현장에 독일 등의 구조 전문팀이 계속 합류하였고, 이들 국제 구조팀은 실종자들을 발견 일주일 만에 모두 안전하게 구했다. 미국 테슬러 전기자동차의 일론 머스크가 로켓 이송용 소형 잠수함 등의 첨단 장비를 제공하였지만, 이를 사용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구조 작업이 진행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국제적인 공조의 위력이 실감나게 보인 사건이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 여러 재난 사고 현장에서 독일 구조팀은 매번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재난 안전 대비와 구조 작업은 철저하고 매뉴얼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시장 연구기관 GFK가 2016년 3월 독일에서 가장 신뢰받는 직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소방관과 구급대원을 1, 2위로 꼽았다. 재난에 대비한 안전과 질병치료 관련 종사자들이 신뢰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도에는 독일판 세월호 사건이 독일 북단 발트해 페만해협 인근에서 한밤중에 발생했다. 덴마크 국적 여객선 글로리아호의 인화물질 폭발사고가 일어나 여객선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 것이다. 그러나 204명의 승객과 선원 32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

 선장의 신속한 대피명령도 있었지만, 사고 접수 후 10분 만에 작전 개시한 해난 구조대 ‘하바리 코만도’의 활약이 컸다. 하바리 코만도는 평상시에 전문인력 40여명과 해안 정찰용 2대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해상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수습에 관한 전권을 행사한다. 경찰, 소방서, 그리고 이들이 보유한 각종 헬리콥터, 구조선, 예인선 등을 총괄 지휘한다. 다른 기관의 인력과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여 낭비요인을 최대로 줄인다. 구조 활동에는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 직속 상부기관인 교통부 장관은 물론 독일 연방 총리도 관여하지 않는다. 동영상 찍어 보내고, 생방송을 통해 수습대책을 협의하는 등의 야단법석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연방 총리가 어디갔나하고 요란을 피우지도 않는다. 모든 구조활동이 구조대장의 지휘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하바리 코만도는 기관의 지위도 높지 않고, 교통부의 외곽조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다른 안전관련 기관들을 지휘하여 사고처리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 하바리 코만도는 사고처리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아 평소 관련 기관과의 합동 교육 훈련을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실시하고 있다. 세밀하고 철저한 훈련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둘째, 하바리 코만도의 일반 직원들은 밤이든 낮이든, 출장 중이든 휴가든 어느 경우에나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45분 이내에 명령받은 장소에 와 있다. 물론 영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주변 국가와의 공동 구조협정도 사고 처리에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세 번째, 재난 공무원, 전문가, 자원 봉사자들이 평소 교육이 잘되어 있을뿐더러, 재난 컨트롤타워가 현장 중심으로, 시스템적으로 작동한다. 상부보고, 상부 지휘 등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없다. 마지막으로, 독일 정부와 국민들은 평소 사전 예방과 대비를 철저히 한다. 취약 지역과 환경을 중심으로 점검을 철저히 하며, 필요한 인력과 장비는 즉각 투입 가능하도록 공조체계를 갖춘다. 그래서 독일은 ‘위기에 강하다’라는 통설이 입증되는 것이다.

 물론, 태국 유소년 축구팀의 구조 활동에는 독일 구조팀뿐만 아니라 실종자 수색팀으로 활약한 영국구조대 등의 국제적인 공조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 사고 열흘 만에 실종자를 발견하고, 발견 일주일 만에 실종자들은 모두 무사 귀환시킨 이들 구조대원에게는 아낌없는 박수와 더불어 꽃다발이 증정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꽃다발 뒤에는 그간의 예방 활동과 훈련, 그리고 철저한 매뉴얼 등 재난 방지 및 구조에 관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일회성 성공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재난 컨트롤 타워는 정상작동하고 있음을 매번 증명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분명히 인재이며 시스템 부재임을 말하고 있다.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를 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사고처리 책임을 물어 해경을 폐지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즉흥적이고, 임시 방편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홍보나 슬로건이 과장되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결과만의 매달리는 꽃보다는 과정 중심의 시스템이 우선되어야 한다. 새 정부 들어서 검찰, 기무사, 대학 등 우리 사회 곳곳에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상부 기관의 입맛에 맞는 데모나 로드쇼가 아니라 철저한 매뉴얼과 더불어, 이를 체계적으로 구현하는 시스템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길 기원한다.

 김동원<전북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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