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법에 대한 단상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법에 대한 단상
  • 장상록
  • 승인 2018.07.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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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전북도민일보에 나간 내 글을 읽은 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남도청 산하 사업소에 근무하는 그는 의례적 덕담 후 이렇게 말했다. “김두관 지사는 네가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무례하고 고압적인 그에게 난 이렇게 답했다. “나는 김두관 개인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습니다. 다만 고위공직자에게 일반국민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얘기를 쓴 것뿐입니다.” 이후로도 글로 인한 소소한 필화(?)가 있었다. 어느 순간 자기검열의 시간을 갖게 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그런 점에서 정파적인 글은 상대적으로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롭다. 그것은 처음부터 열성적 지지와 극단적 반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자기검열의 가장 큰 고려 대상은 나를 아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현실은 그 어떤 물리적 압력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몸살로 제임스 매티스와의 면담을 취소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에 가서 방명록에 ‘대한미국’으로 쓰는 것도 해프닝일 수 있다. 사다리타기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푸틴을 만났을 때 자리에 앉아 A4용지를 읽는 것도 그렇다.

  외신기자가 한미 관계를 질문했는데 한중관계만 얘기하는 것도 사소한 착오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대통령의 모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변론이다.

 “대통령이 사법고시 차석 출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법고시 성적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에서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 하나의 불편한 얘기다. 윤길중은 일제시대 고등문관시험(고시)에 합격해 25세 나이에 강진군수가 된다. 그런 그가 훗날 TV에서 원로자격으로 이렇게 말한다. “일제시대를 산 사람 모두에 대해 왜 독립운동가로 살지 못했나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발언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자.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이 엘리트(?) 청년군수에 대해 일제의 주구라는 생각으로 경멸을 표했을까. 아니면 대단한 수재라는 부러움이 컸을까.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1922년 6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광고가 나온다.

  “충청남도 경찰부에서는 6월 15일 관 내각 경찰서에서 조선인 순사 채용 필기시험을 시행한다. 지원자는 이력서와 민적 등본을 첨부해 해소관 경찰서로 6월 14일 이전까지 제출해야 시험을 칠 수 있다.(공주)” 이에 대해 평범한 조선인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는 것을 경멸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순사 시험 인기는 오늘날 공시족의 그것 못지않았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충청북도에서는 30명을 채용하는 순사 시험에 500여 명이 지원했고, 전라남도에서는 35명을 채용하는 순사 시험에 477명이 지원했다. 당시 시험에 응시했지만 불합격한 사람은 순사가 된 사람을 친일파라 얘기할 수 있을까. 일개 순사 시험이 그렇다면 고시는 어땠을까?

 해방 후 진보당에 참여했던 윤길중은 후일 민정당 시절 지인들에게 서두현령(鼠頭懸鈴)이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준다. 그의 설명이다.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를 위해 어린 쥐 한마리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단다. 그리고 고양이를 향해 이렇게 도발한다. “내가 상대해주겠다. 덤벼.”

  계속된 도발에 화가 치민 고양이는 어린 쥐를 날름 삼켜버렸다. 그 후로 고양이 배 속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와 쥐들이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윤길중은 진보당에 참여한 자신이 군부정권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나름의 논리로 이런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를 이해한다 해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쥐목에 방울달기’의 주체다. ‘서두현령’은 ‘묘두현령’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정부의 성공은 지지 세력의 건강한 견제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쥐가 있다면 그 어떤 고양이가 두렵겠는가.

  이것이 자기검열을 거친 내 글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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