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의 정치에서 합리의 정치로
선동의 정치에서 합리의 정치로
  • 이춘석
  • 승인 2018.06.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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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반복하면 사각형이 사실은 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선동의 위력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독일 나치의 선동가로 잘 알려진 요제프 괴벨스의 말이다.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그의 선동선전술은 나치당의 확대와 히틀러 정권의 장기집권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괴벨스나 나치정권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거짓 선동으로 사람들의 증오나 불안을 부추겨 권력을 훔치고자 하는 괴벨스의 망령은 여전히 정치판을 떠돌고 있다.

이번 익산 선거에서 쟁점이 된 KTX 김제혁신역 논란도 그랬다. 이는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었다. 호남선 KTX가 개통되면서 전라선과 장항선에 이어 호남선까지 모두 익산역에 집중되자 타지역의 KTX역 신설이나 경유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서울까지의 왕복시간을 한 시간대로 단축하는 고속철의 파급력은 인구 유출과 지역경제 파탄으로 위기에 내몰린 지방 입장에선 포기하기 어려운 기회일 테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러한 논란들이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고속철의 효용 때문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김제혁신역이 신설된다면 익산역과의 거리는 14km에 불과하다. 이 거리로는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고속철이 제 속도를 내기는커녕 최소한의 제동거리인 40km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시속 100km대로 감속운행을 하지 않으면 정차 자체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고속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황금알을 서로 갖고 싶은 욕심에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통째로 잘라 나눠 갖겠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상대 후보 측은 정말 이를 몰랐을까? 억지춘향으로 우겨넣은 사전타당성조사 용역비가 확정된 건 작년 말이었다. 사업의 추진여부와 상관없이 민원이 있으면 곧잘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기에 부처에서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빤한 결론이니 차라리 그렇게 논란을 정리해버리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런데 5개월을 잠잠하던 지역 정치권이 선거가 임박하자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익산역을 버리고 김제혁신역을 추진하는 배신자가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 선거 전날 익산역 앞은 KTX 김제혁신역을 막아내겠다는 현수막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흰 광목천 위의 붉은 글씨는 흡사 보이지 않는 전쟁의 선혈을 방불케 했다. 외지에서 온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당장에라도 김제혁신역이 익산역을 밀고 들어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괴벨스는 곧 테러가 닥칠 것이니 선제적 테러로 이를 분쇄해야 한다며 국민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될수록 괴벨스의 권력은 더 막강해졌다. 테러가 닥칠 것이라는 전제에 대해서도, 그것을 테러로 분쇄해야 한다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위나 시비를 논할 여지는 없었다. 확정되지도 않았고 그럴 가능성도 희박한 사실을 단정 지으며 대중을 선동하는 것,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무엇보다 선동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 민의를 왜곡한다는 데에 있다. 갈등을 유발해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분노를 조장해 시민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선동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성숙할 수 없고 그 반대 또한 같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새 시대의 정치는 대립과 분열을 지양하고 협력과 모색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면 선동이 아니라 경청과 설득에 나서야 옳다.

시민들 역시 늘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정치가 문제해결의 본령을 망각하고 한 개인의 사익을 위해 이용될 때 불행해지는 것은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 시민을 위한 정치인지, 솔로몬의 법정에서 진짜 아이의 엄마를 가려낸 그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이춘석<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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