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길지 않은 세월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여 온 세계에서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데올로기화 되었다. 산업화를 성공시킨 사람들은 산업화 이데올로기가 절대적인 가치라고 주장하고, 민주화를 성공시킨 사람들은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절대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화든 민주화든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대적 수단에 불과하다.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는 관성도 있고, 기득권 지키기도 있지만, 해법을 모르는 탓이 더 크다. 아니 새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기성세대는 세상이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자신을 위한 그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필자가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주변이 영화장면 바뀌듯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 아닌가? 해찰하면서 무슨 생각하다가 주변이 바뀌는 것을 놓쳤겠지만, 그때에는 내가 서 있는 무대가 갑자기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기성세대도 이런 식으로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있다. 한 때 자신들이 추구하는 모델이 나타났다고 열광하기도 하였으나 곧 실망하고 말았다. 가상화폐를 통한 대박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고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을 몰라서 일 것이다. 길을 처음부터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신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노래에 불과하지만, 나중에는 큰 운동이 되고 세상을 다 바꾼다.
60년대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비틀즈와 히피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의 번민과 일탈의 문화운동이 생겨났다. 젊은이들의 열망을 표현하는 문화운동은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과 정치적 행동으로 옮겨져 시대의 변혁을 이끌었다.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기성 체제에 저항하여 길거리에 나섰다. 그들의 열망은 7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운동으로 분출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도 젊은이들에 의한 사회변혁이 가능한가. 젊은이들의 열망을 표현하는 문화운동이 보이는가. 소녀시대와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그러나 소란스런 젊은 시절을 살았던 필자에게는 이들이 성공한 젊은이들로 보인다. 고뇌에 찬 일탈로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드는 낭만적 예술가들로 보이지 않는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