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대중화가 별것인가요?
문화의 대중화가 별것인가요?
  • 이흥래
  • 승인 2018.04.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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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 동기동창의 얼토당토않은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전시회라는 게 주제나 사전 홍보, 전시 공간 등 어느 정도의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동안 자신이 쓴 글들을 전주 천변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보고, 말면 말 그런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10여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달렸던 그 친구는 가는 곳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생활 모습을 렌즈에 담곤 했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세상의 모습과 자신의 느낌을 그 사진들을 배경으로 판넬이나 배너 등으로 만들어, 전주 롯데백화점 건너편 천변에서 주말과 휴일동안 전시회를 가졌던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그 친구도 문단 근처를 얼씬거리거나 전문적인 문학 수업을 받은 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글은 제법 그럴 듯했지만 솔직히 밖에 내놓고 남들의 평가를 받기엔 분명히 미흡하고 초라했을 터, 하지만 그 친구는 사진의 배경은 어디며, 나름의 의미는 무엇이라는 등 관람객(?)들과 씩씩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그 전시회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주말과 휴일에 열린 터라, 천변에서 운동을 즐기거나 그곳을 지나간 통행인들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놓은 글들의 내용이 이순의 나이에 느낀 가족과 인생 그리고 친구들의 얘기가 대부분인 탓에 나이 든 관람객들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깊었고, 상당수의 중장년 아주머니들은 그렁그렁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당신과 결혼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극세사 A형보다 잘 생기고 돈 많은 사람과 당신도 한번 살아봐야지요~! 다음엔 꼭~~ 대문자 O형과 만나 행복하게 사세요”-처음 써보았던 ‘아내에게 주는 편지’,

 “우리 어머니는 매운 추위가 올 즈음 다섯 자식들 속 울음에 큰 숨을 서너 번 움켜잡으시더니 긴 여행을 떠나셨다”-‘여행’,

 글들을 차례차례 읽어보자니 맨 끝에 ‘청국장’이란 제목에 묘하게 눈이 갔는데 돌아가신 내 부모님 얘기가 적혀 있어 나는 물론 이를 전해 들은 우리 형제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청국장을 먹을 때면 항상 그 어머님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젠 그분에 대한 그리움으로 청국장이 더 진해질 것 같다.”-‘청국장’

 이처럼 별것도 아닌 전시회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이런 게 어쩌면 우리가 강조해온 문화의 대중화가 아닐까 해서다. 작품 수준이 높진 않다고 해도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고 위안을 주고, 나름대로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문화와 예술이 아니겠는가. 요즘 가을철마다 시골 집 마당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여는 분도 있고, 연말엔 지인들과의 송년음악회 등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벤트 얘길 자주 듣는다. 장삼이사들이 곳곳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창작력을 배양해 나갈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이 바로 문화의 대중화가 아닐까. 하지만, 아직도 이런 문화적 토양이 갖춰지기엔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한 그 친구도 처음엔 전주역앞 마중길에 작품을 세워보려고 시청에 전화했더니 광장 사용 신청서나 시설물 설치 계획서, 성실 이행각서 등 서류만 잔뜩 보내오기에 아예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춘삼월 꽃향기가 서서히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 꽃그늘 아래서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져 삶의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문화가 뭐 별것인가.

 이흥래<전라북도체육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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