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의 위기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 채수찬
  • 승인 2018.03.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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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진핑 주석이 연임하면서 집권연장을 가능케 하는 헌법개정에 성공하고,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4선에 성공했다. 구공산권 양대국가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서구의 언론매체들은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기에다 미국에서는 전통적 언론을 무시하고 트위터로 자기 생각을 마구 쏘아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면서 국정수행 시스템이 요동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가? 최근의 기술 발전이 일으키고 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직접 민주주의의를 실현하게 할 수도 있지만,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보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대로 언론기관을 통하지 않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다수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의회와 같은 대의기관을 통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다수 국민과 직접 소통하여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권위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길도 넓어진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은 개인이 더 넓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필자의 체험을 얘기해보자. 얼마 전 아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 응답전화를 했더니 생일을 축하한다고 한다. 생일이 아니라고 했더니 페이스북에서 내 생일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 아무 날짜나 올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 내 생일을 알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그리한 것이다. 아니면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동의해야 되는 내용에 포함되어 있어 내 의도와 관계없이 동의했는지도 모른다. 또 얼마 전에는 해외출장을 위해 공항에 가는데 구글에서 내가 탈 비행기가 늦는다고 메시지가 왔다. 항공편 예약을 대학교 직원이 했고, 대학교 이메일을 통해 비행 스케줄을 받았는데, 구글이 어떻게 내가 타는 비행기를 알았는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일개 회사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국내외 정보기관들도 원하기만 하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체제 면에서 보면, 직접 민주주의로 가든 권위주의로 가든 대의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조롱거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유감스럽게도 최선의 정치는 없다. 경제학의 한 분야인 사회적 선택이론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애로우(Arrow) 정리가 말하는 핵심이 그것이다. 그나마 인류가 찾은 차선책이 대의민주주의다. 현실적으로 보면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대의민주주의 불완전성을 내세워 이를 파괴하려는 선동가들에 속아서는 안 된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로 가지 않으려면 불완전하나마 대의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다리일 뿐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제도도 불완전한 것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정치체제가 요동치고 있다. 정치를 안정시킬 새로운 대안을 찾고 이에 대한 새로운 ‘일반합의’가 필요하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세계경제포럼 대통령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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