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에 공분(公憤)해야 하는 이유
미투에 공분(公憤)해야 하는 이유
  • 이보원
  • 승인 2018.03.14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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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이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고 있다. 한 여검사의 담대한 용기가 도화선이 됐다.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거침이 없다. 성추문에서 자유로워야 할 종교계까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도지사 재선에 차기 대권후보 물망에 올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운동의 낙뢰를 맞고 침몰했다. 서울시장 도전에 나선 국회의원은 10년전 성추행 사실이 폭로되자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집권 여당은 미투의 태풍에 휘말려 6.13지방선거를 걱정해야할 처지다.

 전북지역 역시 미투 운동이 잇따르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연극배우 S씨는 지난달 26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극단 대표의 성추행을 실명으로 폭로했다. 12년차 중견 여배우인 그는 2012년 극단 명태에서 활동하던 당시 연출가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고작 스물 세 살, 어린 여배우를 추행한 것도 모자라 남자관계가 복잡해서 극단에서 쫓아냈다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늘어놓는 대표”라며 고발했다. 전주연극협회 소속의 한 연극 배우도 극단 대표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2012년 자신을 집요하게 스토킹해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공연까지 포기하며 극단을 뛰쳐 나왔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비난과 배신자라는 낙인이었다. 성폭행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자해를 시도하는 등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문화예술계의 폭로는 대학가의 미투 운동에도 불을 지폈다. 사립대 교수, 인권운동가 출신 대학 강사의 가면이 잇따라 벗겨지며 대학 사회도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각계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괴물 출현 이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갑을 관계와 비대칭 권력구조다. 도지사와 수행여비서, 극단대표와 여배우, 대학교수와 학생 등. 권력자가 상대방을 동반자로 생각하려는 윤리의식과 존엄을 망각하면 반인권적 범죄의 개연성이 내재된 관계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을 한 여검사의 용기가 신호탄이 됐지만 미투운동의 확산은 우리사회에 쫘리를 튼 갑질폐해와 견제없는 권력의 구조적 폐해가 곪아 터진 것이다. 억압받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작은 충격임에도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제나라 경공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명쾌한 설명이다. 어디 정치뿐이랴. 각자가 자신의 본분을 잊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가 미투를 부른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하고 혹독했다. 대학 강단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농락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유명배우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견제와 절제되지 못한 권력과 인간의 욕망이 뒤엉켰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들 미투 사건은 사법당국의 수사로 진실이 가려질 전망이다. 미투의 충격과 사법당국의 수사로 우리사회에 도사린 파괴적 가면들은 잔뜩 주눅들어 있을 것이다. 수정공 효과(crystal ball effect)라는 말이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의 파괴력을 본 인류가 이제는 전쟁의 말로가 어떠할지 수정공을 들여다보듯 알게 되었다는 이른바 학습효과다. 하지만 기억력은 유한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 가슴 졸이며 복지부동으로 미투 태풍이 잦아지길 기대하는 성추문 괴물들은 언제 재발호할지 모를 일이다.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된다.” 기원년 600년 무렵 아테네를 질곡에서 구해낸 정치가이자 시인인 솔론의 말이다. 약자의 고통에 모두가 공분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의 파괴적 ‘괴물’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정의는 더욱 멀어진다.

 이보원 논설위원/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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