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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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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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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인턴으로 있을 때다. 같이 근무하던 여성 비서 입에서 나도 안면이 있던 전직의원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그 전직의원에 대해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 의원이 자신의 여성 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의원은 그 문제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음은 물론 여론화 되지도 않았다.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죄만 있고 벌은 없는 상황에 대한 당혹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가 이것뿐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또 하나의 얘기다. 경향신문 e옴부즈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과의 술자리에서이다.

  그 중 한 분이 영화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내가 알고 있던 한 감독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자세한 얘길 꺼렸지만 분명한 워딩 하나가 있었다. 영화감독의 성적인 일탈문제였다. 주인공은 김기덕이었다.

  차기 유력 대선주자였던 광역단체장과 세계적 거장이라는 영화감독은 이제 스타가 아닌 괴물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 모두 이전 상황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일탈은 있었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없었던 그 시절이 분명 존재 했으니까. 이제 블랙 코미디는 미투와 위드유를 통해 정체를 드러냈다.

  나와 안희정의 개인적인 인연이라면 충남지사로서 행사장에 찾아왔던 그와 악수 한 번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김기덕은 조금 다르다. 그가 영화감독이 되기 전 3일간의 동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되기 전 그와의 만남 얘기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1월 북유럽행 기차에서다. 내가 앉아있던 좌석에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한국분이세요?” 그는 자연스럽게 내 옆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 이름은 ‘안녕하세요.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의 그 김기덕입니다.” 그와의 3일간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경북 봉화가 고향이고 현재 주소지는 일산읍이라는 것과 해병대 하사관으로 제대했으며 그림으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여권 하나 들고 프랑스에 왔다는 무용담은 신선했다. 몽마르트에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나요?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거긴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어서 아무나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곳이 아비뇽이라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거리의 화가를 하며 생활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알게 된 알제리 출신 친구 덕분에 인근 조폭들도 자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그는 자신이 틈틈이 그린 수 십 장의 그림을 촬영해 놓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그린 예수그림에 붙여놓은 반도체 칩에 대해 그가 자신하는 만큼의 예술적 감동을 얻지는 못했다. 세계적 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그의 용기와 실천을 보면서 떠올렸던 것은 아쉽지만 현실을 망각한 과대망상이었다. 그나마 그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상했고 따뜻했다. 나 보다 연배가 거의 10년 위였지만 그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실자라인 유람선 안에서 내게 룰렛에 대해 설명해줄 때 그는 자상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코펜하겐에서 헤어지던 날 그가 점심을 샀다. 사양하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이곳에서 벌이를 하고 있으니 점심 한 끼 대접해도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마지막 인사 후 그는 자신의 일산 집 주소를 적어줬다. 헬싱키에서 그와 찍은 사진과 더불어 아직도 내 앨범에 남아있는 그 메모지는 소중한 추억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이 말했던 화가가 아닌 영화감독이 되어 세상에 나타났다.

  비록 내가 그의 영화에 공감하긴 어렵지만 그의 성공에 대해 참으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괴물이 된 것일까. 영화계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워딩은 위선적이다. 그것은 나 같은 문외한조차 십 여 년도 더 이전에 이미 듣고 있던 얘기 아닌가. 김기덕은 내게 큰 가르침을 줬다.

  위대한 영혼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너무도 평범한 상식에 대해.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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