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 좁은 꼰대입니다
나는 속 좁은 꼰대입니다
  • 김남규
  • 승인 2018.03.11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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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다 속 좁은 사람을 만나면 괜히 경쟁심이 난다’며 우스갯소리로 후배들에게 내가 속 좁은 인간이라는 것을 전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속 좁은 인간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불편해서 먼저 피한다. 논쟁하기 싫은 것도 있지만, 논쟁을 벌이다 보면 내 안에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을 오래 담아두는 성격이라서 그런 상황을 미리 피하기도 한다.

 원래 성격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30년 동안 시민사회운동의 자리를 지켜오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현실에 적응하고 타협하면 내가 지켜온 원칙이 무너질까 두려워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모습은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본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그만인 것을 고집스럽게 논쟁하고 자기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이해가 된다. 어떤 문제 앞에 항상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해 왔으니 나머지 이야기는 곁가지처럼 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을 지켜온 중요한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 그 변화에 근본과 원칙으로 살아온 이른바 ‘운동권’ ‘진보’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꼰대가 되면서까지 붙잡고 싶은 것은 가슴 깊은 한구석에 자리 잡은 욕망, 정치권력에 편승하기 쉬운 ‘진보’라는 이름을 때문일 수 있다. 지난 촛불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당신들은 이제까지 뭘 했나?’ ‘ 옛날에 짱돌 던진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라’는 발언을 했다. 부끄러웠다. 나라가 이 모양이 되도록 뭐했는지, 지난날의 감옥 가고 돌 던지던 무용담이 그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를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어디 부끄러운 것이 그뿐인가? 지옥 같은 대학 입시 경쟁 앞에 말로는 평등한 교육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자식에게 일류대를 고집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의 욕망은 욕하고 자신의 욕망은 합리화하지 않았나? 진보의 부패한 모습에 눈 감고 보수 탓만 하지 않았나?

 요즘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에 대해 ‘지지’한다는 말보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성희롱과 성추행이 될 만한 행동이 나에게도 있었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시대를 살아왔던 주위 사람들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여성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을 ‘몸’으로 인식해왔던 것에서 ‘인간’으로 이해하기까지(그것도 아직 부족한 이해)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남성으로서 누려왔던 권력을 역지사지하는 것도 익숙지 않다. 그 때문에 속 좁은 나에게 미투 운동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을 비롯해 최근 SNS를 달구고 있는 시민권리 운동은 시민들의 촛불이 탄핵에 머물지 않고 생활 혁명으로, 국민 주권에서 시민주권으로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정권교체를 했지만, 과거처럼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촛불이 그랬듯이 직접 나서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적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앞 물을 밀고 들어오는 새로운 물결에 자리를 빨리 내 주면 된다. 특히 의미 없는 편 가르기를 일삼는 자칭 진보 역시 그래야 한다. 이제 진보가 아니라 꼰대라고 고백해야 한다. 변화의 물꼬를 트는 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진보이다. 이념과 사상으로 진보를 논하던 시대는 갔다.

 김남규<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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