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신화 품고 있는 장수군 팔공산
조선 개국신화 품고 있는 장수군 팔공산
  • 이재진 기자
  • 승인 2018.03.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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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개구리도 놀라 튀어 오른다는 경칩(驚蟄)이 다가오는 춘삼월의 첫 주말. 가벼운 산행을 준비하는 상춘객은 금남호남정맥의 중심이며 팔성사와 합미성, 조선 개국신화를 품고 있는 장수군 팔공산(八公山)으로 떠나보자. 동료 또는 가족, 연인끼리 장수사과와 한우가 특산지인 장수군 팔공산에서 가벼운 산행으로 봄기운을 만끽하며 겨우내 쌓여있던 묵은 기운을 털어 내자!
 
  전라북도 장수군 팔공산은 해발 1천151m의 고산준령으로 장안산(1천237m)과 함께 장수군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금남호남정맥 4개의 구간 중 수분령∼신무산∼팔공산∼와룡자연휴양림(신광재)을 잇는 구간으로 금강발원지 뜬봉샘과 섬진강발원지 데미샘을 함께 거느리고 있는 금남호남정맥 2구간(23.8km)으로 산악인들에게 잘 알려진 등반코스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반 전문가나 동호회는 꼭 거쳐 가야하는 필수 코스다.

 또한 팔공산은 호남정맥이 연결되는 까닭에 호남의 진산이라 불리우며 팔공산 정상 남쪽 작고개 방향으로 뻗어 내린 해발800m 능선에 합미성은 후백제 때 축조된 성으로 군량미를 이곳에 모아 놓았다하여 합미성(合米城)이라 불렸다. 1985년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어 옛 성터의 유적을 구경하며 산행할 수 있다.

 특히 합미성은 2014년 1차 발굴조사 결과 가야계 유물과 후백제계 유물 등이 출토됐으며 성벽의 축조방법이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판명되어 학계의 관심이 높아 국가사적(국가지정문화재) 및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키 위해 2016년 5월25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합미산성 내부의 건물지 및 성벽 수목정비에 대한 2차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 팔공산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서남쪽에 위치한 팔공산(八公山)은 해발 1,151m의 준봉이며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또한 팔공산의 수분재에서 물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흘러 한쪽 물은 금강이 되고, 다른 한쪽 물은 섬진강이 된다.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장수·진안·영동·옥천·대덕·연기군까지 오던 산을 따라서 올라간다. 물이 거슬러간다고 하여 역류삼백리라하고 산이 오던 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하여 역산삼백리라 한다. 추풍령을 지나 덕유산·장안산·팔공산으로 해서 다시 추풍령 밑으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팔공산을 호남의 진산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팔공산에 성수산·마이산·주졸산·남노·북노를 연결하여 충청도 일부를 팔공산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 경남을 경계로 하고 호남의 전역이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다.

 팔공산에는 기원 6세기경에 팔성사라는 고찰이 창건되었고 팔성사에 예속된 암자 8개소가 있었는데 암자마다 성인이 한 분씩 거처하고 있었으므로 팔성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합미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이며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합미성(含米城)은 후백제(892~936) 때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 300m, 성벽의 높이는 안쪽이 4.5m, 바깥쪽이 1.5m 정도이다. 합미성이라는 이름도 성안에 군량을 보관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성벽은 파괴되었고,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마실 물을 지하로 급수하던 것이라는 수로관 시설이 작은 연못과 함께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이곳에서 3㎞쯤 떨어진 곳에 신무산(神無山)이 있다.

 신무산에 허수아비로 군사를 만들어 적군이 합미성으로 오지 못하도록 유인하여 무찔렀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성 안에 쌓아두었던 쌀이 불탄 흔적으로 성안을 파면 불에 탄 쌀이 나왔다고 한다.

 지역 사람들은 합미성이 위치한 지역을 ‘수꾸머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군사가 주둔했던 곳, 즉 수군지(守軍地)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 개국신화 팔공산 당재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당재는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가 되며 옛날에는 신당(神堂)과 상이암(上耳庵)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명산의 산신이 영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리산과 장안산 등에서 제단을 차리고 신천지를 열어 등극할 수 있도록 기원했으나 산신이 영령하지 않았다. 이어 팔공산에다 신당을 차리고 석달 열흘을 조석으로 목욕재계한 후 정성을 다하여 개국역사에 영령해 주시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백일째 되는 날 새벽에 하늘에서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일더니 빛을 타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성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신천지를 열어라는 소리같이 들렸다. 귓전을 스치는 이 소리는 새 나라를 열라는 하늘의 영령(계시)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이성계는 아담한 암자를 짓고 정중히 천제(天祭)를 올리고 천명(天命)을 귀로 들었다 해서 상이암(上耳庵)이라 불렀다.

 그 뒤 이성계는 새 나라를 열고 등극하여 근세조선국 태조가 되었는데 정사에 바쁜 중에도 관아로 하여금 신당과 상이암을 돌보게 하여 현감이 몸소 현지를 살피기도 하였다 하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집은 없어지고 자취마저 희미하다. 다만 신당이 서 있던 재를 당재라 부른다.

 장수=이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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