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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는 정의가 패배하는 이유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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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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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주역인 성희안(成希顔)과 관련된 일화다. “한 번은 옥당에서 숙직을 하면서 임금이 불러 밤에 들어가 뵈니, 성종(成宗)이 술과 과일을 하사였는데 성희안이 귤 십여 개를 소매 속에 넣고는 술이 취하여 엎드려 인사불성이 되니 그만 소매 속의 귤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임금께서 다음날 귤을 다시 한 쟁반 내리며 하교하기를, ‘어제 저녁 성희안의 소매 속의 귤은 어버이에게 드리려 한 것이니, 그 때문에 다시 주는 것이다.’ 하니 공이 뼈에 새기고 임금을 위하여 죽을 것을 결심하였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만일 누군가 스스로 자신이 완벽하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약함을 고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고립된 존재로서의 완벽함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완벽함은 관계속에서 구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의 완벽함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와 더불어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자산이다. 

  내게도 성희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파리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본의 아니게 무임승차하는 장면이 됐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출입구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앞서 나간 프랑스인이 자리를 지켜줬다. 나는 분명 정당한 요금을 내고 티켓을 샀지만 그가 볼 때는 무임승차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나올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입구를 통과한 나를 보고 그는 가벼운 미소를 남기고 떠났다. 이후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을 보면 그때를 떠올린다. 만일, 그 프랑스인이 나를 ‘무임승차한 얄미운 동양인’으로 치부했다면 어땠을까. 자칫 나는 어글리 코리안의 멍에는 물론 지하철 운임의 수 십 배에 달하는 벌금까지도 내야했을지 모른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했다. 그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남겨진 왕자와 공주는 학대 속에 죽어갔다. 2차 대전 직후에는 독일군과 관계한 여인들을 삭발시켜 조리돌림 한 나라다. 그런 그들에게 ‘똘레랑스’는 어떻게 다가온 것일까.

  냉철하고 신념에 충실한 혁명가, 그는 국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세움으로써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정신을 구현한다. 헤겔이 가장 존경했다는 인물, 로베스 피에르다.

  완벽한 사람이 없다지만 그것에 거의 근접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는 주인공이다.

 그는 영웅심에 가득한 나폴레옹이나 선동적인 독재자 히틀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사심 없이 혁명정신의 구현을 위해 매진했다. 그런 그가 왜 단두대에 서야했던 것일까.

  그의 혁명정부가 얼마나 원칙에 충실했는지 알려주는 일화 중 하나다.

  ‘백년에 한 번 나올 과학자’라며 라브와지에를 살려달라는 청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한다. “혁명정부에 과학자는 필요 없다.” 그에겐 혁명완수를 위한 정의감은 충만했지만 사랑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혁명가로서 숙명적으로 안고갈 수밖에 없는 무게였을지 모른다.

  후일 테르미도르 반동에 의해 로베스 피에르는 그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단죄했던 바로 그 단두대에 서게 된다. 나는 프랑스 혁명정신이나 로베스 피에르가 성취한 업적을 추호도 폄하할 생각이 없다. 오늘 프랑스인들이 보여주는 똘레랑스의 근본은 혁명을 통한 구악의 일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결여된 정의가 가져오는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것이 혁명가의 숙명일지라도.

  봉건왕조와 식민지 그리고 분단과 전쟁. 이 모든 과정을 불과 한 사람이 모두 겪을 수 있던 역사를 가진 한국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어려운 질문에 답을 내놔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분단모순이 해소되는 그 순간까지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될지 모른다.

  다만, 로베스 피에르가 보여준 사실 한 가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혁명 상황에서도 사랑이 없는 정의는 승리하지 못한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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