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녀올게”
“회사 다녀올게”
  • 나영주
  • 승인 2018.02.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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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다녀올게.”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하면서 하는 말이다. ‘회사’는 직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회사원이든, 도청과 학교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든,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든, 편리하게(?) 쓰일 수 있는 말이 바로 ‘회사’다.

 ‘회사’라는 말은 때론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영화에서 비밀 첩보원은 자신의 조직을 ‘회사’라고 칭한다. 실제 국가정보원에 다니는 ‘회사원’들도 자신의 조직을 ‘회사’라고 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CIA와 같은 외국 첩보기관원들도 자신들의 직장을 ‘회사(company)’라 말한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아예 대놓고 컴퍼니가 통칭인 경우도 있다.

 소설가 김훈은 수필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밥 벌어먹는 삶의 고단함을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이렇듯 모든 이에게 ‘밥벌이’는 고단함이다. 자아실현의 장으로써 직장은 반쯤 맞는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아이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조직의 낚싯바늘에 꿰어져 끌려다닌다. 때론 낚싯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정리해고, 조직개편과 같은 ‘회사’의 논리에 맞춰 직장을 잃거나 한직으로 밀려난다. 밥줄이 끊겼다는 충격을 넘어 자신이 헌신한 조직에 대한 배신감에 회사원들은 몸을 떤다.

 보통의 사람들은 20대 ‘회사’에 들어가 50대 후반 ‘회사’에서 나온다. 인생 대부분을 ‘회사’에 헌신한 사람들은 회사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길게 갈 것도 없다. 10년 정도만 어느 한 조직에 몸을 담게 되면 그 조직과 동화된다. 조직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체화한다. 개성이 강한 조직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어느 순간 직장인들은 ‘회사’가 자신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충성하게 된다. 아니, 충성은 타자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듯 ‘회사’를 사랑하게 된다. 유별난 자부심도 가지게 된다. ‘회사’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라고, ‘회사’의 힘이 나의 힘이라고 여기게 된다.

 몇 일전 어떤 ‘회사원’의 용기 있는 고발이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부심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회사다. 그녀에게 죽음과 같은 수치심을 주었던 그 ‘회사’의 또 다른 ‘회사원’은 ‘회사’의 권력을 전횡했다. 그녀는 ‘회사’에 호소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외면과 보복이었다.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8년 세월 동안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회사 다녀올게.”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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