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건설 표준도급계약서 유명무실
민간건설 표준도급계약서 유명무실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8.01.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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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에서 순위에 손꼽히는 중견건설업체 A사 대표는 요즘 상가 신축공사 현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축주가 시공 과정에서 구두로 지시한 추가공사 때문에 수억원이 소모됐지만 계약금액에 반영하지 않은데다 건축주의 잘못으로 발생한 민원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지만 지체상금을 거론하며 공사비 정산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SOC예산감소와 외지 대형건설업체들의 건설시장 잠식 등으로 수주난이 계속되면서 그동안 관급공사에만 의존하던 도내 건설업체들이 민가공사에도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이번에는 일부 건축주들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민간공사에 대한 공정계약을 위한 ‘민간건설 표준도급계약서’와 자율 조정기구인 건설분쟁조정위원회가 마련돼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면서 건설사들은 민간 발주자의 ‘갑(甲)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건축ㆍ시설물은 발주자에 따라 공공, 민간공사로 나뉜다. 공공공사에서는 법으로 발주자와 수급인, 수급인과 하수급인 등의 계약관계를 촘촘히 규정한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자의 권한 남용을 막고 대등한 위치에서 도급계약을 맺어 불공정행위를 막으려는 법적 장치다.

반면 민간공사에서는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로 계약을 민간 자율에 맡긴다. 정부가 마련한 민간건설 표준도급계약서(표준계약서)는 현장 채택률은 높지만 모호하고 불합리한 규정 탓에 실효성이 낮아 ‘을(乙)’ 지위에 있는 건설사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 틈을 비집고 발주자의 불공정행위가 판을 친다. 건설사들은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계약 금액 불인정 △하자 판정, 보수비용 산정 피해 △사용승인 후 준공검사 거부 △경미한 하자를 이유로 부당한 지체상금 지급 강요 등 다양한 갑질에 시달린다.

심지어 민간 발주자가 입주해 사용하면서도 하자보수를 이유로 잔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심심치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표준계약서 개선과 함께 건축주의 전문성 강화를 주문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건설 적폐인 민간공사의 갑질을 줄이려면 민간건설 표준계약서를 현실에 맞게 고치고 법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A건설 관계자는 “하도급자는 민간영역이라도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구제받을 길이 있으나 원도급자는 발주자의 갑질에 무방비 상태”라며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지자체를 통해 보급하며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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