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신작 시집 ‘어느 날’
고은 시인, 신작 시집 ‘어느 날’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1.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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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가상현실/ 그리하여/ 증강현실// 1백 20년 이내로 슬픔이 사라진다// 다시 태어난 나/ 무엇으로 살거나/ 물로 살거나/ 불로 살거나”「어느 날1」

 미수(未壽)를 앞둔 노시인의 하루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애잔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하다. 저만치에 서서 현실과 가상조차 구분 짓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를 바라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어느새 인간적 감정마저 사라지고 말 세상을 걱정하는 뜬 눈. 이에 대한 섬뜩한 예언까지 남기고 있으니, 갑자기 머리를 맞은듯 정신이 바짝 들고 말았다.

 하나의 문학사로 불리는 이름 고은. 그가 신작 시집으로 ‘어느 날’이라는 제목의 시 217편을 묶은 시집 ‘어느 날(발견·1만2,000원)’을 공개했다.

 시집 속 각각의 시편들은 ‘어느 날’이라는 단어에 1번부터 217번까지 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마치 어느 날 문뜩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지에 남긴 것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사족을 덜어내고 있는 짧은 시들은 가벼운듯 보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노시인의 원숙하고 노련한 시적 상상력을 맛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민족 시인 혹은 저항 시인으로 요약되는 시인의 삶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과 부면들에 대한 통찰과 관련된 비판과 저항 정신이 여전히 번뜩이고 있다.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지 않던가. 고은 시인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에 처절하게 서서 온 몸으로 시를 썼던 사람이라고….

 그런데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

 한 편 한 편 시를 읽어나가다 보면 통찰이나 비판의 대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의 시선은 반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사회,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 배타주의적 편견 사회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 현실의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린 자유의 시간을 오롯이 담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노년의 시간에 다가온 허무와 죽음 의식 또한 삶에 대한 하나의 인식으로 구체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테면 삶과 죽음 마저도 디지털 문명에 의존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비판 정신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간판과 더불어/ 광고와 더불어/ 석가도 기독도 무엇 무엇도/ 카톡과 더불어// 내 삶이 이럴진대 죽음도 그럴진대”「어느 날 38」

 이형권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어느 날’은 인생의 모든 시간, 우주의 모든 시간을 표상하는 무궁의 시간이자, 현실의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린 자유의 시간, 시의 시간이다”면서 “이 시집이 장식하는 고은이라는 문학사의 한 페이지는, 제사(題詞)의 표현을 빌리면 그런 ‘어느 날’에 만난 ‘이 세상 구석구석/ 벅찬감동’의 기록이다”고 평했다.

 지금, 이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자유다.

 어느 날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들, 가슴을 두드린 이야기들이 시가되어 나비 처럼 내 삶에 날아 들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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