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그리워하는 추사 김정희
차를 그리워하는 추사 김정희
  • 이창숙
  • 승인 2017.09.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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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3>
추사가 초의를 위해 준 호이다.(간송미술관 소장)
 추사는 차를 구하기 위해 주변의 지인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제자 이상적, 초의와 자흔과 향훈, 쌍계사의 관화와 만허 스님 등, 차를 그리워하며 보낸 여러 통의 편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유배지의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귀한 차를 보내준 이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보내 답례를 한 추사. 그것을 받은 이들 모두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고 기뻤을까.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 1786~1856)는 24세(1809) 때에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게 된다. 2달 정도 그곳에 머물면서 당대의 거장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완원(阮元, 1764~1849)을 만난다. 완원은 추사를 자신의 서재에 초대 한다. 47세 대학자의 서재에 초대받은 24살의 천재 추사는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의 업적을 본다면 당시 아마도 심장이 멈추고 머릿속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았나 싶다. 또한 그 자리에 용단승설차(龍團勝雪茶)가 있었다 하니, 차의 맛과 향기에 대한 기억은 수십 년이 흘러도 잊지 못한 듯하다. 승설도인(勝雪道人)이라는 필명을 쓴 것으로 보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추사가 이재 권돈인에게 보낸 글에서 “지리산 스님에게 얻은 차가 40년 전 중국에서 마신 승설차의 남은 향기와 같다. 이 차는 영남 사람이 스님에게서 얻었다하니, 차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들이 스님들과 사이가 좋으니 도모해볼 만합니다. 또한 제 글씨를 아주 좋아하니 교환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였다. 스님이 만든 차를 칭찬하며 더 구하는 방법까지 말한 것으로 보아 추사의 차 욕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또한 추사는 쌍계사의 만허 스님에게서 직접 차를 받고 그의 차를 중국의 용정차보다 낫다고 칭찬 한다. 또한 중국에서 가져온 찻종지 한 벌을 선물하여 육조탑에 차를 공양하게 한다. 「호봉스님에게 보낸 편지」에는 “요즘 선림에서 참선을 구실삼아 칠불암 아자방 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20~30년 지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차 만드는 일로 참선을 겸하여 육조탑에 차를 공양하니 사람마다 육조탑의 둥근 빛을 먹게하네”라는 대목이 있다. 혹시 만허가 차를 만드느라 참선에 소홀했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일까. 추사는 차를 주는 이에게는 참으로 너그러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차가 그리울 때는 여지없이 애절함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추사는 제자 이상적에게도 차를 부탁한다. 나랏일로 중국을 왕래하던 역관인 이상적에게 중국차를 부탁하는 대목이다. “… 먹던 차가 다 떨어져 달리 청할 방법이 없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청할 수 없고, 내 생각에 자네의 묵은 주머니도 차가 다 떨어졌을 터인데, 미생고의 식초가 성인께서 나무라신 바이나, 있든 없든 서로 도운 것은 부득이 함 때문이요. 이에 번거로움을 무릅쓰니 살펴주시기 바라네.” 이렇듯 추사는 제자에게도 떨어진 차를 부탁하는 자신의 염치없음을 『논어』에 나오는 미생고 이야기까지 말하며 간절함을 드러낸다.

  차를 직접 만드는 초의에게 보낸 걸명(乞茗) 편지를 보면 “편지만 있고 차는 보이지 않는구려, 산속에 바쁜 일이 없을 터인데, 내가 이렇게 간절한데…. 늙어 머리가 다 흰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하니 참으로 우습구려. 사람을 양단간에 끊겠다는 건가. 이것이 과연 선(禪)에 맞는 일이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편지도 보고 싶지 않소. 다만 차의 인연만은 없애지 못하고, 쉽사리 끊어버릴 수가 없구려. 이렇게 재촉하니 편지는 필요 없고, 다만 두 해 동안 쌓인 빚을 함께 보내시면 되오.” 추사는 기다리던 차는 오지 않고 편지만 당도하자 초의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조르는 글이다. 편지 말미에는 “차를 보내지 않으면 마조스님의 할과 덕산스님의 몽둥이를 피해 달아날 도리가 없을 터이니 다 미루고 이만 줄이오.” 라며 으름장까지 놓는다. 유배된 인물이지만 추사와 초의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추사의 편지에는 신분의 차이보다는 차를 잘 만드는 동갑 스님에게 차를 청하는 글로 간절함이 배어있다. 추사가 초의에게 지어준 명선(茗禪)이라는 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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