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차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면…
초의차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면…
  • 이창숙
  • 승인 2017.08.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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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2>
단원 김홍도「군현도」
 차(茶)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의 명성에 대해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그는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차계(茶界)에서는 해마다 초의제와 초의관련 행사를 치르고 추모하고 있다. 그는 조선후기의 승려로 시문과 그림에 능했으며 유가의 경전에도 해박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직접 차를 만들어 문사들과 나누며 그들과 시문으로 교유했다. 초의의 차 다루는 솜씨를 알아주는 경화세족(京華世族), 이들은 초의가 만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이에 초의는 화답시를 보낸다. 당시만 해도 초의는 신분이 낮은 승려였지만 이들은 중국의 선진 문물에 익숙해 있는 학문과 예술세계를 선도하는 세련된 문화인들이었다. 하지만 초의차의 애호가였으며 든든한 후원자들이었다.

  초의를 전다박사라 칭한 자하 신위(신위, 1769~1845)는 금령 박영보(朴永輔, 1808~1872)의 스승이다. 그는 금령이 준 초의차를 맛본 후 시를 지어 초의를 ‘전다박사(煎茶博士)’라 부르기 까지 한다. 신위는 ‘자신이 맛에 대해 욕심이 없고 담백하지만 차에만은 그렇지 못하며, 차는 마시면 정신이 번뜻 들게 한다. 중국의 용단차와 봉미차는 훌륭하지만 그 값이 황금 무게와 같아 너무 사치스럽고, 초의의 차를 마셔 기름기를 씻어내니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 날아갈 것 같은 경지를 느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외에도 차에 대한 많은 시를 남긴다.

  다산이 유배시절 가장 아꼈던 제자 황상(黃裳, 1788~1870)이 있다. 유배초기에 동문 밖 주막집에서 열었던 서당의 강학에서 초의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의 나이 15세 다산의 손발이 되어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다. 황상이 학질을 앓으면서도 쉬지 않고 끝내 책을 초서(抄書)하는 것을 보고 ‘훗날 학문의 성취는 말할 것도 없고 나보다 더 높겠구나’ 칭찬하며 학질 끊는 노래‘를 지어주었다 한다. 다산은 아들과 함께 유람을 떠날 때도 황상과 함께하였다. 하지만 다산이 초당으로 거처를 옮길 때 황상이 부친상을 당하고 강학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 후 백적산에 들어가 40년 동안 다산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땅을 일구며 살았다. 40년이 지난 후 대둔사(大芚寺) 일지암(一枝庵)으로 초의를 찾아가 재회한다. 황상은 처음에는 초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 후 초의가 만든 차를 청하며 시문을 주고받고 자주 왕래하게 된다. 황상의 시문 속에는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丁學淵, 1783~1859)이 ’초의차‘라는 명칭을 붙여줄 만큼 초의가 만든 차는 인기가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유산과도 지속적인 교유가 있었다. 1831년 초의는 정학연의 집에 머물면서 장안의 명사들과 시회를 여는 등 명성을 드날리게 된다.

  오늘날 초의가 다성으로 불리게 된 가장 큰 연유는 홍현주의 다도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 「동다송」 저술 덕이 크다. 해거 홍현주(洪顯周, 1793~1865)는 정조의 사위이다. 그가 남긴 차시만 해도 무려 110수나 될 정도로 그는 차를 즐겼던 차인이다. 초의와 해거와의 첫 만남은 1830년 겨울이다. 초의가 그의 스승 완호의 삼여탑에 새길 시문을 받기위해 직접 만들 차를 가지고 상경한다. 이때 해거는 재현 5인과 함께 청량사의 산방에서 초의를 초청하여 시회를 열었다. 늦게 도착한 초의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가 초의차를 맛본 후 1837년 북산 변지화(卞持和)를 통해 초의에게 다도에 대해 물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동다송」을 지었다. 이것이 우리의 차를 칭송한 글이다. 이렇듯 초의의 차 다루는 솜씨가 아무리 뛰어난들 서로 통하는 이가 없었다면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추사 김정희와 산천 김명희 외에도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의 차문화는 면면히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자연의 섭리는 어길 수 없는 듯, 말복이 지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차 한 잔 나누고 싶어진다. 한 여름이 지났으니 발효차를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간 더위를 식히느라 찬 음료를 많이 마셨을 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속을 달래보면 어떨까한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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