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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대하여(2)
최정호 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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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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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정의하였다. 왜 영혼의 활동인가? 돈과 권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고 영혼이 탁월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유가 없는 노예의 상태에서 그리고 빈곤에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육체의 고통도 행복을 방해한다. 인간에게 윤리적인 선행을 통한 정신적 자족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은 철학자의 직업적 편견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행복에 윤리적 삶은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인 셈이다.

 우정은 어떠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세가지로 나누었다 1. 즐기기 위한 우정, 2. 효용성을 위한 우정, 3. 덕이 있는 우정. 우리는 <언어>의 효용과 한계를 알고 있다. <우정>이란 단어 역시 이름만 같을 뿐 사람들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한다. 즐기기 위한 우정은 취미나 운동을 함께하는 사이에 해당한다. 보통 사람들이 친구라고 부르는 좋은 관계를 말한다. 효용성이 있는 우정은 직업적인 동료나 사업상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러한 효용성이 있는 우정을 귀하게 여기고 재산을 증식하고 출세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필수적인 덕목으로 꼽는다. 경조사를 챙기고, 등산을 같이하며, 골프를 함께하고, 술자리를 만들어 효용성이 있는 우정과 즐거운 우정을 혼합하고 승화시키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유능한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이러한 우정은 사실상 동맹을 만들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우리사회에서 생존과 번영을 원하는 사람들이면 그 효용성을 다 알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는 장래에 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친절과 주는 친절을 은밀하게 계산한다. 한쪽의 손해가 확인되면 이러한 우정은 자연스럽게 종말에 이르게 된다. 서로 탐색하고 상대방의 속을 더듬어 속셈을 확인한 후에 <거래>가 성립되면 <우정>의 깃발이 세워지고 그 <효용성>과 <즐거움>으로 거래는 은폐된다. 이러한 <우정>은 야비한 융통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재산이 많거나 권력이 높은 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자에 비해 더 많은 친구와 더 많은 우정을 받는다. 사람들은 힘이 센 사람에겐 더 낮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며, 그와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고 싶어한다.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친구는 전화 한 통으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우정(amacitia)과 사랑(amor)은 모두 ‘사랑하다’(amare)란 말에서 유래한다. 우정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계산적 거래의 복합물이다. 친구의 거짓말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친구의 적을 제압하여 동맹을 강화하며 미래에 돌아올 보답을 기대하는 것은 <우정>의 미덕이자 악덕이다. 이러한 <우정>은 <형제애>에 가까운 감정적 유대를 바탕으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한 <동맹>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공동체의 타인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해악을 초래하기도 한다.

 <덕>이 있는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행복>이 탁월한 영혼의 활동에 있듯이 <덕이 있는 우정>은 교양이 있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정신적으로 통찰력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교양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현재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교양이 있는 사람만이 현실을 초극하여 현실을 내려다볼 수 있다. 교양이 있는 두 친구는 지나간 고난과 닥친 현실에 대해 높은 관측소에 앉아 사나웠던 강물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넘어야 할 높은 산을 조망하듯이 지나온 체험과 다가오는 어려움을 객관화하여 발밑에 두고 함께 내려다볼 수 있다. 참된 우정은 쌍방간에 내면의 선함과 교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공허한 영혼에 우정의 고양은 허용되지 않는다. 참된 친구는 사상의 향연을 함께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철저한 논쟁이 가능한 것이 우정의 특권이다. 불한당들의 협력을 우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친구에게 옳지 못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하고 옳은 일에는 친구가 원치 않아도 먼저 나서는 것이 덕이 있는 우정이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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