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차(茶) 사랑
다산 정약용의 차(茶) 사랑
  • 이창숙
  • 승인 2017.07.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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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0>
다산초당(사적 제107호),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다.
  얼마 전 완도에 스님을 만나러가는 길에 지인과 함께 들린 다산 초당, 만나기로한 시간이 촉박하였건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산초당을 들리게 되었다. 결국 시간이 늦어져 광주로 가게 된다. 가파른 산을 올라 다다른 다산 초당과 다조와 연못, 정석이라고 새겨진 돌, 당시 다산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슬픔과 즐거움, 희망을 품었을까.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20대 초반부터 차를 가까이 했던 것 같다. 그의 시문 중에 ‘백아곡(白鴉谷)의 차나무 찻잎이 피니, 마을 사람들이 내게 주어 한포 겨우 얻었네’ 라는 구절이 있다. 백아곡은 다산의 집이 있는 여유당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당시 경기도 광주 검단산 북쪽으로 차나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는 21세에 지은 것으로 그가 20대 초반부터 차를 가까이 했음을 알려준다. 강진으로 귀양(1801년 말)을 오면서 본격적인 음다(飮茶)생활이 시작된다. 온지 4년 뒤 여름 백련사에서 아암(兒庵) 혜장(惠藏, 1772~1811)과 만남이 시작되었다. 당시 다산이 기거한 곳은 동문 밖 주막집 뒷방이었다. 혜장이 고성사의 보은산방(報恩山房)에 거처를 마련하여 주었고 자주 왕래를 하게 된다. 유학자인 다산과 승려 혜장의 관심사는 『주역』과 차로 그들은 토론과 음다(飮茶)를 통해 교유가 이어졌다. 또한 다산은 스스로 차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칭할 정도로 차를 청하는 시문들도 여러 편 전해진다. 다산이 혜장에게 차를 청하는 시(詩)중에 “혜장이 나를 위해 차를 만들어놓고”라는 시가 있다. 혜장이 다산을 위해 차를 만들었는데 그의 제자 색성이 다산에게 먼저 차를 선물하게 된다. 마음이 불편해진 혜장이 차를 주지 않는다. 다산은 혜장을 달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며 차를 청하는 시이다.

 

 ‘옛날에 문여가(文與可)는 대나무를 탐했고, 지금의 탁옹(?翁)은 차에 빠졌네.

 그대는 다산(茶山)에 사니, 온 산에 찻잎이 돋아났으리.

 제자의 마음 씀은 저리 후한데, 그 선생의 예법은 매정도 하여라.

 백 근을 준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터인데, 두 꾸러미 주는 게 뭐가 어때서.

 만약에 술이 달랑 한 병뿐이면, 어이해 깨지 않고 취하리.

 유언충(劉彦沖)의 찻그릇은 이미 비어있고, 미명(彌明)의 돌솥도 쓸모가 없네.

 이웃에 설사병 걸린 이 많아, 찾아오면 무엇으로 고쳐 주리오.

 오직 다만 벽간월(차)로 치료하여, 구름 속 맑은 모습 토해내시게나.’

 

  당시 차는 기호음료라기보다는 음식을 먹고 더부룩한 체증과 설사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임이 컸던 것 같다. 아마도 다산에게 차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닌 힘든 유배생활을 지탱해주는 신약과 같은 것이었다. 다산은 1808년 초당에 기거하면서부터 음다(飮茶)생활이 더욱 깊어진 듯하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기록도 있지만 많은 시문과 기록을 남긴다. 또한 다산은 혜장의 소개로 만난 초의(草衣, 1786~1866)에게 『주역』과 『논어』를 가르치게 된다. 초의에게 유교와 불교의 독서의 차이에 대해 말한 대목이 인상 깊다.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유학은 의심이 없는 곳에서 의문을 일으키고, 불교는 의심을 일으켜 의문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아마 초의가 유·불에 대한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자 이렇게 정의한 것은 아닐까 한다. 다산은 조선의 차문화에 하나의 축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차가 마냥 즐거움만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차가 있다.

  다산에게는 유배지에서 살림을 맡아 하던 정씨라는 소실과 홍임이라는 딸이 있었다. 다산이 해배된 후 다산을 따라 상경하였다. 하지만 소박을 맞아 다시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내려오게 된다. 정씨와 딸은 다산을 그리며 해마다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냈다고 한다. 다산이 그 차를 받아보고 그리움을 전하는 시가 있다. ‘기러기 끊기고 잉어 잠긴 천리 밖에 매 년 오는 소식 차 한 봉지로구나.’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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