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
뉴스 자치행정 오피니언 포토ㆍ동영상 스포츠ㆍ연예 사람들 보도자료
편집 : 2017. 9. 22 14:17
사설
모악산
데스크칼럼
기자시각
정치칼럼
전북시론
경제칼럼
프리즘
시시각각
아침의 창
세상읽기
도민광장
특별기고
독자투고
독자기고
 
> 오피니언 > 아침의 창
아침의 창
논개의 정신
임보경 역사문화원 대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7.1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네이버밴드 msn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1900년대의 문학가 변영로의 논개를 위한 시에서 그녀의 충절을 애틋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수백년이 지난 오늘 그 역사 속에서 다산 정약용에 이어 근대의 한용운 등이 그녀의 죽음을 향해 애처로이 남긴 시어들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세상 밖으로 피어났다.

 음력 5월의 윤달이 끼어 올해의 여름은 더 덥고 길다고 한다. 마른 장마인듯해서 하늘을 원망하며 타들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덩달아 근심해보았는데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푸르름과 신령스러움이 가득한 장수에 들렀다. 이번 기행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남도 진주성의 치열한 전투에서 수많은 백성과 관군 그리고 의병들 항전의 마무리를 의연하게 치룬 의암 주 논개님이다.

 그녀는 기록에 처음 등장하기를 17세기 초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논개에 관한 글이 기록된다. 그녀는 1574년 장수군 주촌에서 주씨가문의 딸로 태어난다. 그녀의 생가지를 찾아보니 그녀 집안의 삶을 잠시마마 엿볼 수 있었다. 아버지인 주달문은 서당 훈장님으로 살아가지만, 논개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녀의 삶 또한 파란만장한 여정을 겪게 된다. 여기서 잠깐 재밌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이름(논개(論介))이 사주에 개 술(戌)자가 4개나 들었다 해서 ‘개를 놓았다(낳았다)’는 뜻으로 지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남겨진 논개는 집안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가세가 기울어졌음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아버지는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반대를 하다못해 그녀와 야반도주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관아에 잡혀들어가게 된다. 그 당시 장수 현감으로 부임해 온 최경회가 심판을 해보더니 논개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밝혀내지만, 그들이 갈 곳이 없음을 알게 된 최경회는 그의 부인 병수발을 들게 하며 머물 것을 허락한다. 그 후 최경회의 부인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최경회 현감은 논개를 후처로 받아들이게 된다. 최경회가 현감자리에서 물러날 무렵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1593년 최경회는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워 경남 우병무사로 발령을 받게 되어 논개도 뒤를 따르게 된다. 1593년 6월 11일 2차 진주성 싸움이 시작되고 19일간의 치열한 전투로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수많은 백성과 참전한 이름모를 누군가들의 영혼이 울부짖었다. 그중 최경회는 수하 장수들과 패배에 대한 굴욕으로 남강에 투신하게 되고 참혹한 진주성 전투는 막을 내린다. 왜구는 7월7일 남강에서 승전축하행사를 치르게 된다. 남겨진 논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참 많이도 고민했으리라 본다. 본래 성품이 강직하고 의로운 성향이라 그녀의 결정또한 단호했으리라 본다. 축하행사에 기생으로 가장해서 들어간다. 열손가락에 끼워진 10개의 가락지가 그녀의 굳은 결심을 말해준다. 왜장인 게아무라 노코스케를 껴안고 남강의 의암 바위에 서서 투신한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순간 1919년의 3.1운동의 앞자리에 선 유관순 열사의 투혼이 짜릿하게 생각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진주 백성들은 그녀의 죽음을 매우 한탄스럽게 생각한다. 안쓰럽고 애처롭고 가슴이 쓰려 그녀의 혼이나마 위로코자 최경회가 묻힌 무덤 아래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어준다. 그곳은 장수도 진주도 아닌 함양군 서산면에 마련하게 된다. 여기에는 출생지인 장수로 시신을 옮기려니 육십령 고개를 만나 넘어가기 어려워 이곳에 모셨다는 이야기도 더불어 전한다. 그 마음 너무 잘 헤아린 진주 백성들은 국가에 논개부인의 공을 치사할 것을 요구하지만 묵살되고 만다. 유교사상의 영향일까? 아니면 남아선호사상의 입장에서 공로에도 차별을 두는 것일까? 아니면 선조의 시기와 질투심이 남녀를 불문하고 대상이 되었던 탓일까? 안타깝다. 그래서 진주백성들은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의암 바위 옆에 사적비를 세우게 된다. 그 후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그녀의 죽음은 150년이 지난 영조 때에 가서야 인정받게 되어 의기사를 짓고 그녀를 위로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 고종 시대에 이르러 그녀를 위로한 제를 지내게 된다.

 그 후 그녀의 이야기는 내 어릴 적도 지금에서도 쭉 전해지면서 여러 학자들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문학가들에 의해 남강의 물이 유유히 흐르듯 의암의 위치도 그대로인 채 우리들 후손의 가슴에 논개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남아있게 되었다.

 나라의 위급한 난세에 어찌 영웅심을 발휘함에 남녀노소가 따로 구분될 수 있겠는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라의 곤경을 해결하고자 뛰어듦이 옳은 것을 공로의 대상을 구함에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싸우다가도 화해하고 그러거늘 촛불시위의 위력으로 난세를 바로잡고자 함에도 어제의 의견충돌에 오늘은 서로 의견을 모아야 함이 당연한 것을 나라의 난항을 지아비에 대한 은혜의 보답으로 뒤를 따름이 조선시대 열녀의 기준으로 축소됨과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 잘못된 시대의 이념을 깨우쳐주고 그녀의 묘가 어디에 있다 한들 그녀를 따르는 백성의 마음은 한결같으리라 본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임보경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google_plus msn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베스트 클릭
1
‘황금 땅’ 이서묘포장, 어떻게 활용할까
2
한남대, 서남대 인수 추진 불발되나
3
문동신 군산시장, 광석운반선 수주 위해 발 빠른 행보
4
“추석황금연휴 KTX타고 ‘전북’으로 오세요”
5
전주 효천지구, 중소기업 장기근속자 주택우선 공급
신문사소개기사제보독자투고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북 전주시 덕진구 벚꽃로 54(진북동 417-62)  |  대표전화 : 063)259-2170  |  팩스 : 063)251-7217  |  문의전화 : 063)259-2176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북 가 00002   |  등록일 : 1988년10월14일  |  발행인, 편집인 : 임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상기
Copyright 2011 전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o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