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34년 만에 누명 벗어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34년 만에 누명 벗어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7.06.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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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와 함께 간첩으로 몰려 자신은 사형을 당하고 조카는 복역중 숨진 이른바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34년만에 무죄를 선고 받아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나 뒤늦게나마 저승에서라도 한을 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는 29일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당한 고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고 최낙전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측은 2014년 7월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9월30일 재심이 결정된지 9개월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유족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8월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16년 전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최낙교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국가기밀을 수집해 북한에 보고하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리던 이근안 경감에게 40여일 동안 고문을 당한뒤 그해 10월 서울지검 공안부 정형근 검사(전 한나라당 국회의원·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에게 넘겨져 수사를 받았다.

 1983년 3월 1심에서 사형과 지역 15년을 각각 선고 받은 최을호씨와 최낙전씨는 거듭 항소와 상고를 했으나 차례로 기각됐다.

 특히 최낙교씨는 1982년 12월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기각 처분됐다. 당시 검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가족은 아직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최을호씨는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최낙전씨는 9년을 복역한 뒤에도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된 지 4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이날 “여러 자료와 증언을 살펴보면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고 고문에 의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최씨 등이 간첩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최낙전씨의 아들 최원일씨는 “참 아픈 기억은 아버지가 잘못했으니까 감옥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라며 “가족마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던 시대였으니 간첩으로 조작된 아버지의 고통이 어땠을지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사건 조사와 유가족 지원을 맡았던 고문치유단체 ‘진실의힘’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들의 죽음은 당시 경찰과 검찰이 어떻게 서로 동조하고 묵인하면서 평범한 일가족을 간첩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은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형식적인 항소·상고로 일관해 무죄판결을 지연시켜 왔다. 정의의 지연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진정으로 국가가 용서를 구하려면 검찰은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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