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 회춘의 묘약은 경제민주화다.”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 회춘의 묘약은 경제민주화다.”
  • 한성천 기자
  • 승인 2017.04.13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전창조아카데미 CVO과정 제5강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13일 저녁 7시 전북도민일보 6층 대강당에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한국경제 조로증과 회춘의 물약’이라는 주제로 비전창조 아카데미 특강을 하고 있다. 신상기 기자

 ‘조로증’은 어린 나이에 노화현상이 나타나 노인처럼 되는 희귀한 유전성 질환이다. 한국경제는 마치 조로증에 걸린 아이처럼 완전한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노화현상을 겪으면서 성장동력이 쇠잔해지고 장기침체의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국경제가 회춘하는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정확히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13일 전북도민일보 비전창조아카데미 2기 CVO 과정 강단에 선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의 조로증은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추격형 성장체제의 후유증이고, 처방의 핵심은 경제민주화다”고 강조했다.

#1 성장동력 감소, 그리고 경제 노화

경제성장은 생산물, 혹은 소득의 증가를 말한다. 성장의 동력에는 ▲인구성장과 교육 등에 따른 실효노동력의 증가, ▲투자에 따른 자본축적(자본스톡의 증가), ▲기술발전과 새로운 아이디어 등을 통해 주어진 노동과 자본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는 ‘총요소생산성 증가’라고 부른다.

노동력의 질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 부른다. 문제는 사람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어서 교육기간이나 인적 자본 축적은 무한정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 증가, 혹은 그 바탕이 되는 지식자본의 축적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해주는 요소다.

1950~1980년 사이 고도성장을 한 일본이 이후 성장률이 낮아졌다. 10년 전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던 중국 성장률도 7%대 성장이 버겁다. 모두 경제의 노화현상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노화현상은 인구증가율의 감소와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증가의 쇠퇴 때문이다.

개도국은 선진국을 모방하면서 그 수준을 높여나갈 수 있다. 이를 ‘후발국의 이익(advantage of backwardness)’이라 하며, 이에 입각한 성장을 ‘따라잡기 성장(catching-up growth)’ 혹은 ‘추격형 성장’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소득 비율을 핵심적인 지표로 제시했다. 이를 ‘피케티 비율’이라고 부른다. 이 비율이 높으면 노동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의 비중이 커지고, 상속부자들이 부와 특권을 독점하는 ‘세습자본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2 한국경제 조로 원인은 혁신부진

1960년대 도약의 단계에 접어든 한국경제는 1980년대 말까지 두자릿수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7%대에서 2000년대 5%, 2010년대 3%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수년간은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KDI는 2020년대 2%대, 2030년대 1%대의 잠재성장률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에 나타나는 노화 원인은 ▲노동력 문제다. 한국의 저출산·노령화 현상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 문제는 노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점이다. ▲자본의 과잉축적도 원인이다. 한국의 높은 피케티 비율(국부/소득 비율)을 통해서 확인된다. 한국은 2012년 9.45로 나타났다. 미국 4.45, 영국 4.92, 캐나다 5.03, 독일 5.67 등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 높은 토지가격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유행어에서 드러나듯 한국의 자본소득 비중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다. 반면, 노동소득 비중은 너무 낮다. ▲자본의 낮은 생산성도 노화를 촉진시킨다. 1990년대부터는 창조적 혁신이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해법은 혁신 부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3 박정희 모형의 성공과 한계

한국경제가 왜 조로증에 걸렸는가? 성장체제의 전환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도약단계에서 한국은 ‘추격형 성장체제’를 구조화시켰다. ‘박정희 모형’이라고 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특징적인 형태의 성장체제가 성립되었다. 시기에 맞게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어 곧 ‘조로증’이 나타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구축한 추격형 성장체제는 ▲‘정부주도의 성장전략’, ▲자본에게 유리하고 노동에게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여 ‘자본축적의 극대화’, ▲내수를 경시하고 해외시장을 중시하는 수출주도 전략형 ‘저임금 정책’, ▲선진기술의 모방, 습득, 응용을 통한 ‘선진기술 따라잡기’, 그리고 ▲‘선택과 집중전략’이다.

박정희식 추격형 성장체제에서 자본축적에 따른 성장 효과는 매우 컸다. 그리나, 부작용도 컸다. 내수를 경시하고 수출에 주력한 결과 대외의존도가 높아져 해외충격에 취약한 경제가 되었다. 정부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 관치금융과 재벌체제가 형성되었다. 결국, 추격형 성장체제의 전환이 더뎌 노화가 가속화되고 말았다.

#4 반복되는 경제위기 그 원인은.

한국은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을 실시했다. 자본과잉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한 까닭에 실효노동력은 감소하고 과잉축적의 문제는 더욱 악화됐다. 노동을 하대하니 당연히 노동의 재생산이 타격을 받았다.

혁신을 가로막는 박정희 모형의 유산은 이뿐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남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잡기 할 때는 유효하지만 새것을 창조할 때는 부적절하다. 작년에 ‘알파고’에 놀란 정부가 인공지능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대응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발상 때문에 4차 산업혁명에 뒤지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모형의 가장 구체적이고 유산인 ‘재벌체제’는 창조적 혁신을 억압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재벌은 고급 자원을 독점하고, 산업생태계를 지배함으로써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상속부자가 부를 대부분 차지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는 문제도 결국 재벌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젊은이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성공의 기회는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5 성장체제 전환으로서의 경제민주화

‘7% 성장률’이라는 터무니없는 고도성장을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의 재임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2.9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등장한 경제민주화는 경제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변화, 자본위주 모방중심에서 노동위주 혁신중심으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를 위한 회춘의 묘약이다.

전환이 성공하려면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정부 주도 산업진흥정책과 관치금융의 유습을 청산하여 재벌중심 독점구조를 타파하고, 중소기업과 혁신적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 모든 변화의 원칙이고 토대다.

한국경제는 올해부터 인구절벽에 맞닥뜨린다. 한국경제는 이제 새로운 정치지도자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성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