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의 좌단
정치의 책임과 실천의 좌단
  • 정항석
  • 승인 2017.04.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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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단(左袒). 왼쪽 어깨를 보이도록 웃옷을 벗는 것으로 뜻을 같이 할 때 쓰는 말이다. 서한(西漢) 초기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죽자 그의 황후 여태후(呂太后)는 첩의 아들을 독살하고 첩은 눈을 멀게 하고 귀를 잘라 버리고 변소에 가두어 버려 죽게 만들었다. 고조의 첩과 그 어린 아들을 처참하게 죽인 다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황제로 등극시킨다. 그리고 한실의 권력은 여태후에게 집중되었다. 오랫동안 참았다고 할까. 여태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을 모아서 권력의 맛을 보게 했다. 한실의 군사력을 남북으로 나뉘어서 북쪽에는 여록(呂祿)이 조왕(趙王)이 되어 장악하게 하고 남쪽에는 여산(呂産)이 여왕(呂王)이 되어 온통 여씨(呂氏)집안에서 황실과 한조(漢朝)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다. 이에 여태후의 횡포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한 상황에 이르렀다. 뜻있는 인사들도 주색에 빠진 듯이 가장해야 살 수 있었다. 여태후의 큰 잘못은 자신의 사적 분함을 전횡(專橫)으로 바뀌어 놓았다는 데 있었다.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치환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권력을 십분 악용하였던 것이다.

 봄이 오면 거친 나무에 싹이 나라고 꽃이 피어나듯이 곪으면 터지게 되어 있다. 유씨(劉氏) 일족, 진평(陳平)과 주발(周勃) 등은 B.C. 180년에 여태후가 사망하자 여태후에 빌붙은 이들을 주살하고자 난을 일으켰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그들의 명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이들에게 좌단(左袒)을 그렇지 않는 이들에게는 우단(右袒)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사기(史記)의 여후(呂后)본기(本紀)>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옛이야기이다.

비단 이러한 것이 옛것에 그치는 것인가? 근자에 들어 우리사회는 우단과 좌단에 관한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과 파탄이 들어나면서 이들이 전횡했던 파국과 이를 본디로 돌리자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배가 기울었으니 바꿔 타야 한다면서 정당의 명칭도 바꾸는가 하면 새로운 최고 의사결정자도 다시 선택해야한다고 하면서 속속 오는 5월에 있는 대선(大選)에 박차를 가하는 차기 대선주자들이 참았던 정치적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몇 가지를 돌이켜 보자. 만약 여태후가 한고조의 첩과 아들을 극진하게 대우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처와 첩의 관계가 반드시 복수의 칼에 의해서 처참하게 잘려나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볼 일이나 그러한 구조나 시스템에서 오는 것들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示唆)한 바가 없는가’하는 것을 묻고 싶다. 이를테면 이렇다. 건국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불행한 사태를 보여주고 있다. 단지 분단된 한국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 사회는 말하고 있지만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작다. 굳이 대통령제를 고집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떠한 대안도 없이 무작정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좌단을 요청한다는 이들만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몸살이 난 경제를 살려서 절대대다수의 서민을 위한 대안적인 기강 목소리는 설득력도 그리고 구체성에서 희미해 보이는 까닭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보이는 정국 그리고 그 실천에서 구체성과 설득력도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오늘날 우리는 우리사회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4년에 대해서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일일이 열거할 가치가 없지만 거두어야 할 반성이라면 이렇다. ‘곪은 것이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더 이상 잘못된 선택의 결과와 그 쓰디쓴 경험을 결코 반복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이제 좌단의 목소리는 책임과 실천의 측면에서 투영되어야 하는 바, 대통령을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 소진되고 고갈된 국민들에게 책임과 실천의 정치를 심어주는 일이 우선이다. 말하자면 전국가적인 차원에서 즉각 대안적 시각을 투영하여 선진적 정치건설을 논의하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과 모레를 생산적 노정이 될 것이다. 이것이 민주를 향하는 것인 동시에 누구라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좌단이다. 진실로 국가 제도 기관, 의회 등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모두 현국정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제도화 과정으로 투입시켜야 하는 국가적 과제가 국민들 앞에서 놓인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의 꽃이 만개될 수 있도록 하는 좌단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정항석<정치학박사·미래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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