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아직 마르지 않은 情
졸업식, 아직 마르지 않은 情
  • 국방호
  • 승인 2017.02.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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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졸업가’는 50, 60대에게는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어쩌면 책과 공책을 살 여유가 없어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으며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말 그 때는 사제모두가 헤어짐을 섭섭해 하며 졸업식장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하고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려는 요즈음, 한 시간 반에 걸친 행사에서 교사와 학생이 눈물을 흘렸다면 빛바랜 60년대의 졸업식을 구태의연하게 재연한 탓일까? 국민의례와 시상, 축사, 송사, 답사 등은 실내악의 은은한 반주에 맞추어 축하의 박수 속에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학생이고 그들의 가족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시종일관 군더더기 없이 다소 빠르게 진행되었다.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끝난 직후 교사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또 다른 교사의 신디사이저 반주에 맞추어 가수 이 하이의 ‘한숨’을 불렀다. 또 한 명의 교사가 무대에 들어서며 두 번째 소절을 불렀다. 다음 소절에서는 또 한 교사가 트럼펫으로 연주를 해 강당을 청아한 음색으로 가득 채웠다. 식장은 순식간에 콘서트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사이 먼저 들어온 교사들은 밴드의 자기 파트인 키타 드럼 보컬 등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학생 교사 학부모는 물론 내빈까지도 화면에 비친 가사를 보며 일제히 따라 불렀다. 모두가 하나가 된 축제의 분위기였다. 노래가 진행되는 도중 열 명의 교사가 마치 카드섹션을 하듯이 종이판을 하나씩 들고 단상의 계단에 일렬로 섰다. 소절이 바뀔 때마다 카드를 바꾸면서 내용도 바뀌었다. “순식간에 간 시간들, 아직 나는 너를 기억해, 세상 가장 빛나는 모습, 3년이라는 시간들, 잊지 않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한두 번 손발이 맞지 않아 웃음소리가 들리다가도 후반 문구에 가서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교가를 끝으로 공식적인 의식은 끝났다. 그러나 백미는 다음부터였다. 하늘색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1반부터 한 줄로 퇴장을 하는데 단상 앞에서부터 강당 뒤편 출구까지 줄지어선 교사 및 내빈들과 인사를 하고 강당 밖에서 인간터널을 만든 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 3년간 고생 많았다.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너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거야! 1년 금방 지나간다. 전화위복으로 생각해라.” 축하와 격려의 악수를 하고 가끔은 안아주기도 했다. 이게 웬 일인가. 한 학생이 사내아이인 데에도 엉엉 우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요즈음 보기 드문 눈물, 그것도 남자아이가 콧물까지 흘리면서 울다니.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 두 학생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학부모들이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강당을 가득 채웠던 학생과 학부모가 빠져나가니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학생들이 왜 울었을까? 평소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불연 듯 생각난다. 진로에 관한 상담은 물론 모든 담임과 부대끼며 행사를 치르던 모습과 휴일까지 반납하고 학생부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던 모습, 특히 입시를 앞두고 어투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지적하며 바른 자세를 지도해주던 애정들이 오늘의 북받치는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30여 년간 졸업시킨 학생들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졸업 후에 탄탄대로를 걷는 제자들, 보육원에서 다니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의지가 강했던 제자, 30주년 행사에 생활고로 나오지 못한 급우를 배려하던 제자 등… 그러나 한결같게 자존심을 지켜가며 굳건히 살아가는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각 분야에서 ‘정의와 도전’이라는 사명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제자들을 위해 졸업식 축사에서 외친 구호인 ‘사명과 열정(Mission & Passion)’을 다시 한 번 외쳐본다.

국방호<전주영생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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