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북 정치는 역설적으로 호남 정치권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오히려 내용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국내에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하면서 전북정치는 호남 정치의 울타리에 갇히게 됐다. 지난 1988년 13대 총선부터 평민당 황색 돌풍이 호남을 강타하면서 전북 정치권은 전남·광주의 정치 영향력에 급격히 편승했다.
전북 출신의 4선인 A 전 의원은 “지난 13대 총선 이후 17대 열린우리당이 탄생할 때까지 국회의원 당선과 직결되는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김 전 대통령이나 측근인 광주·전남 정치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평민당 공천만 받으면 지팡이를 꽂아도 당선되는 시기다. 전북 정치가 김 전 대통령의 등장 이후 ‘호남’이라는 화장을 하고 야당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남·광주 정치의 종속변수가 된 것이다.
#2: 만년 야당 신세였던 전북 정치는 국민의 정부 5년, 참여정부 5년 등 10년 동안 여당 권력을 갖게 됐다.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전북 정치는 권력을 가진 주류였지만 직접 권력을 주는 능동적 형태가 아닌 받는 수동적 입장에 머물렀다. 전북 정치가 권력의 핵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만족하는 ‘육두품론’이 이때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국민의정부 시절 전북 출신의 한승헌 변호사가 감사원장을 맡았고, 고 신건 국정원장, 정세현 통일부 장관,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이무영 경찰청장 등도 모두 전북 출신이었다. 여당에서도 김제출신 고 조세형 의원이 당 대표를 맡았으며, 정균환 사무총장과 함께 당시 정동영, 정세균 의원이 소장파를 이끌었다.
재선을 지낸 전직 의원은 국민의 정부를 회상하며 “전남출신 권노갑 고문을 정점으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이른바 동교동이 권력의 핵심부였다”며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전북 정치권은 국민의 정부에서 제한적 권력에 만족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민의 정부와 달리 전남·광주 정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정동영 의원이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당 주류는 전남·광주에서 친노세력으로 옮겨 갔다.
#3: 그 육두품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차기 대선에서 전북 정치의 역할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야를 통틀어 현재 대선 거론되고 있는 대선 후보는 10여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전북은 물론이고 호남 출신 유력후보가 없는 상태다. 또 지난 4·13 총선부터 영·호남 지역대결이 점차 희석되면서 차기 대선은 영·호남 지역구도가 아닌 세대 간 대결에 보수와 진보 등 이데올로기 성격을 띠고 있다.
전북 정치권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어 정치적 다양성을 주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전북 정치의 분열로 차기 대선에서 응집된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특히 더민주는 총선 참패로 당내에서 전북 정치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고 국민의당 또한 전남 정치권이 당 대표, 원내대표, 국회 부의장 등 모두 차지하면서 전북 정치권은 철저히 비주류 신세다. 전북이 정당한 몫을 찾기 위해선 정치권의 위상부터 회복해야
서울=전형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