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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떴다 비거(飛車), 날아라 김제 정평구
신성욱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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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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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킬데빌 언덕에서 라이트 형제는 기계를 타고 하늘을 나는 실험을 했다. 구경꾼은 다섯 명 뿐이었다. 앞으로 움직이던 기계의 승강타를 잡아당기자 기계 몸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곧이어 비행기는 땅으로 떨어지면서 미끄러지듯이 모래밭에 착륙했다. 비행 시간 12초였고, 비행 거리 36.5m였다. 

 이 비행을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비행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300년전 임진왜란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비거(飛車)가 등장하였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비행이자 공중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비거가 전북 김제 부량면 출신 정평구 선생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역사적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본명은 정유연이다. 무관이었으니 요즘 문제되는 동명이인처럼 말도 잘 탔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의 왜사기(倭史記)에 의하면, 비거로 말미암아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데 큰 곤욕을 치렀다. 비거는 약 2km 높이 뜨고, 한번에 무려 30~50리(약 10~20km)를 날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정에 상소를 올려 공을 치하하려 하였다. 그러나 조정은 비행기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헛소문으로 취급해버렸다. 최남선은 우리나라를 빛낸 위인 100인중에 정평구 선생을 꼽았다.

정평구 선생이 만든 비행기는 복원되어, 공군사관학교,국립과천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다. 안타까움은 그의 고향인 김제와 전라북도 어느 곳에도 그 역사를 기록한 표지석이나 그림 한 점도 없다는 것이다.

113년전 라이트 형제와 정평구 선생은 시대와 나라, 그리고 비행 방식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들이 같은 점이 있다면 황당한 상상력과 무모한 도전정신이다. 비행기를 만들었고, 목숨을 걸고 그 기구에 올라탔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와 정평구 선생에게 정말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씨앗’이기보다 ‘환경’이 아닐까 한다. 커다란 숲도 작은 한 알의 씨앗에서 비롯된다.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숲이 되려면, 햇볕과 물, 토양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씨앗도 환경이 맞지 않은 면 살 수 없다. 종종 사회, 국가, 기업의 발전이 한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을 역사를 통해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디어는 씨앗과도 같다.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상상력과 직관이라고 했다. 인류사에서 그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끈 상상력과 도전은 당대의 기준으로는 보면, 황당하고 때로는 무모했다. 그러한 상상력과 도전을 갖은 사람은 지구촌 어디든 있지만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은 흔치 않다. 여하튼, 환경이 다른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는 계승 발전되었고 정평구의 비거는 사라졌다. 19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비거에 대해 안타까움을 “조선 사람들도 능히 만들 수 있다. 다만 세상에 전하지 못하였을 뿐이다”라고 했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엉뚱한 상상력과 도전을 하는 괴짜에게 너무 인색하다. 얼마나 모범생이었는지가 정치, 사회적으론 물론 창업, 취업 등의 평가기준이 되어 있다. 지금 전주 어디선가 정평구,라이트형제, 스티브 잡스 등을 닮은 씨앗들이 싹을 틔워보지만 물이 없어서 햇볕을 볼 수 없어서 시들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상력과 도전을 장려하는 미국에서 린드버그는 단 한번의 비행으로 영웅이 되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웅으로 만들어졌다. 대서양 횡단이 그가 최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행은 미국적 창의성과 도전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미국인들은 열광하였다. 한 신문은 “인류 역사상 한 사람이 해낸 것 중 가장 위대한 공적”이라고 뻥을 쳤다. 우리는 정평구 이야기를 아직도 허풍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삼가고 있는지 모른다. 참 예의바른 백성이다. 21세기는 무한 상상력의 시대라고 한다. 지금이라도 정평구 선생은 물론, 최초로 국제조종사이며 민간항공사와 비행기 제작소를 설립한 신용욱 선생, 조종사 꿈을 안고 일본에 건너갔다가 극진 가라데를 창시한 최배달 선생 등처럼 선배 전북인들이 갖고 있던 상상력과 도전의 기질을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그 DNA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신성욱<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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