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일
그녀의 마지막 일
  • 나영주
  • 승인 2016.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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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두 돌이 지난 아이가 있다. 아이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게 뭐야?” 이제 막 모어(母語)를 입에 올린 아이에게 세상은 놀라운 것들 투성이다. 중력을 거슬러 두 발로 걷는 첫 걸음마처럼 힘겹지만, 말을 통해 자신 이외의 타자와 사물을 향해 첫 입말을 뗀다. “꽃이야” “꽃… 꽃...” “꽃이 예쁘지?” “예쁘지가 뭐야?” 명사와 형용사를 직관적으로 쏙쏙 흡수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경이롭다.

아이는 이제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쁘다’는 말도 직관적으로 느낄 것이다. 꽃을 바라보고 느낀 예쁘다는 감정을 무지개를 보고도 느낄 것이다. 이로써 아이는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 아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느낌의 씨앗은 이제 오롯이 예쁘다는 말을 통해 세상에 활짝 핀다.

대학시절 언어학 개론 교양 수업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소쉬르와 바르트 같은 언어학자들도 인간의 언어가 세계와 맞닿아 있는 그 지점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들을 내 놓았다. 그들은 언어가 인간의 사유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 사람이 쓴 글을 가져와 보세요” 노무현 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을 지냈던 강원국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직자를 기용할 때도 그가 쓴 글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나아가 연설문을 직접 쓰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연설비서실에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설문 작성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노무현은 그만큼 말과 글에 대해 엄격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과 글은 한 사람이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언어라는 방식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지표다. 세 살짜리 아이는 ‘예쁘다’는 말을 알기 전에 그 감정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집’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집’이 없으면 세계관은 쉽게 휘발된다. 입말을 보다 정밀한 언어로 구조화시키는 글쓰기는 더욱 그러하다. 개인의 글쓰기도 그의 퍼스넬리티를 드러내는 중요한 행동양식인데 대통령의 글쓰기는 더 말해 무엇하나. 대통령의 연설문은 그의 국정철학이 담긴 매우 중요한 통치행위이자 핵심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수 명의 전문 연설비서관의 긴 토의와 퇴고, 대통령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결과물이었다.

대통령 한 개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행정부와 국가의 수반으로서, 대한민국이 5년간 추구해야 할 가치와 철학이 담겨야 했을 연설문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년의 여성에게 ‘첨삭’을 ‘당했’다. 박근혜씨는 꼼꼼히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첨삭을 받았다고 했다. 중년의 여성이 연설문 뿐만 아니라 국정 전반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다가온 이후 그녀는 한 차례 더 사과를 했지만, 첫 번째 사과에서 그녀가 보여준 인식은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여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연설문 ‘첨삭’에서 정권은 끝난 것이다. 그 후 밝혀지는 외교·안보·국내정치에 대한 개입은 더 볼 것도 없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씨가 가장 즐겨쓰는 말이 ‘하극상’과 ‘색출’이라고 했다. 그녀의 ‘집’은 이처럼 무시무시하고 빈곤하다. 그녀는 지금도 국민의 하야 요구를 반정부세력의 하극상이라고 보고 색출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자신의 누추한 ‘집’을 허물고 사라지는 일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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