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적 통찰의 향토적 선비 시인
순명적 통찰의 향토적 선비 시인
  • 김동수
  • 승인 2016.10.27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5. 박종은(朴鍾殷:1948-)

  전북 고창 출생. 군산교육대학교 졸업. 1990년부터 시집 <<세월 위에 띄우는 배>> 외 6권의 시집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장. 고창교육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고창예총회장과 미당문학회 수석 부회장, 미당문학제 추진위원장을 맡아 남다른 향토애로 고창문학과 예술의 활성화에 전념하고 있다.

희망이 담긴 주전자로 / 한 움큼 물을 뿌리면 / 알몸으로 기어오르는 한 마리/

지렁이 -(중략) / 오르고 나면 / 오로지 허공뿐이라는 걸 - <욕망> 1994.

피투체 유한자로서 어찌할 수 없이 오늘을 살아가야만 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그것은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끊임없이 끌어 올려야만 하는 시시포스에게 내린 신의 형벌처럼 인간 존재의 숙명적 한계와 외로움의 깊이를 인식한 시인의 남다른 우주적 통찰의 인생관이다.

명예를 걸어 두고?던 자루와 / 부를 챙겨 넣고?던 궤짝을 / 허공에 비우고 싶습니다.

비워서 / 영혼처럼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 <放下> 일부

‘욕망’과 ‘허무’, 이 두 틈바구니에서 자기조율을 통한 안심입명의 경지, 곧 중도(中道)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앞의 ‘지렁이’와 <방하>에서의 ‘명예’와 ‘부’의 ‘욕망’, 그리고 앞의 두 시에서 그 끝이 모두 ‘허공’으로 연계되어 있음이 그것이다.

욕심도 씻어 비우고 / 오욕도 털어내며 / 가을 하늘로 맑아지면

- <세월 위에 띄우는 빈 배> 일부

결국 생의 종결은 ‘허공’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그러기에 ‘가벼운 영혼’, ‘맑은 가을 하늘’을 지향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치열한 현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뛰어 넘어 자연의 이법과 천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공’(空), 곧 도(道)의 세계가 병존하고 있다.

서설이 훨훨 내려서/ 한지처럼 아름다운 세상이던 날/ 봉산산방 아주 비워두고/ 삼베버선 발에 끝내는 국화꽃가마 타고/ 그렇게 돌아오더이다

별것 아닌 이야기도/ 요모조모 살펴 이리 저리 굴리면/ 기가 막힌 시가 되고/ 살아생전 하구한 날 / 떠돌이 바람으로/ 돌 가슴 나무 가슴에도 /가락으로 머물고 풍류로 들썩이더니 - <질마재로 돌아온 미당> 일부

미당의 고장에서 태어난 박종은 시인은 일찍이 그에게 시적 영감을 안겨준 미당의 서거에 대한 추모의 정이 남달리 애틋하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읽다가/가끔은 멈추고 밑줄을 긋는다/ -생략-/ 얼룩진 내복을 빨아 널 듯/ 수시로 영혼을 세탁하기 위해//생활을 쓰다가도/ 쓴 글 되짚어 밑줄을 긋는다’

- <밑줄 긋기> 일부

끊임없는 자기 수련과 회광반조의 삶으로 열망과 좌절의 실존 현장에서도 초연하게 생을 통찰, 자신의 삶을 아름다이 조율하고 있는 향토적 서정의 선비 시인이라 하겠다. (김동수: 시인. 미당문학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