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 - 한국전쟁 때 겪은 고난이 생각나
밥 차 - 한국전쟁 때 겪은 고난이 생각나
  • 김동수
  • 승인 2016.09.2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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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2. 김길남

  전주 완산칠봉 끝자락 투구봉에 철쭉이 만발하다. 하여 구경하러 나섰다. 두 친구와 싸전다리에서 만나 서서학동 주민센터에서 능선으로 오르려 했다. 주민세터에 이르니 점심을 제공하는 ‘밥차’가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망설이던 참이라 반가웠다. 아무나 밥을 주느냐하니 12시에 오라한다.

  새로 돋아나는 연록의 나뭇잎에 마음을 빼앗기며 올라 투구봉 입구에 이르니 겹벚꽃이 아직도 볼만했다. 벌써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길을 메웠다. 철쭉은 탐스럽게 핀 꽃송이를 주저리주저리 매달고 눈길을 유혹했다.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병아리처럼 종알거리며 좋아했다. 현장학습 나온 초등학생들도 몇 팀이 보였다. 이만한 볼거리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꽃그늘에 앉아 쉬다가 시간이 되어 내려왔다.

  어디에서 왔는지 관광버스에서 노인들이 내려 주민센터 마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지 기다려야했다. 밥을 얻어먹으려고 왔으니 누가 밥을 주는지 알고 싶었다. 봉사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도 잘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물으니 ‘온고을 사랑나눔연합회’와 ‘참 좋은 사람들 사랑나눔공동체’란 단체에서 주었단다.

  공짜로 주는 밥을 먹는 것이 쉬이 내키지는 않는다. 오늘은 여럿이어서 대중심리로 참석하여 먹었다. 한 번은 통장이, 노인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니 꼭 나오라고 사정을 하여 나간일이 있었다. 전주여자상업고등학교 급식소에서였다. 찾아가니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나 혼자 끼어서 기다리는데 공것 바라는 사람처럼 느껴져 부끄러움이 앞섰다. 누구 아는 사람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참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한 끼의 식사는 대수롭지 않지만 굶는 사람에게는 천금 같은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지만 한국전쟁 때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며칠을 굶다보면 먹을거리가 그렇게 필요했다. 좋고 나쁜 게 없었다. 시래기건 된장국이건 나물무침이건 아무거나 먹어야했다. 지금 같은 밥차가 그 때 있었으면 얼마나 환영을 받았을까. 아스라한 보릿고개가 꿈 같이 느껴진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가 생각난다. 1988년 청량리역 광장을 지나다 나흘 동안 굶어 누워있는 노숙자를 발견하고 설렁탕을 대접한 것이 밥퍼나눔운동본부 시작이다. 지금까지 날마다 청량리에서 1천 그릇의 밥을 퍼주고, 중국 베트남 네팔 탄자니아 등에서 5,500그릇의 밥을 퍼준다고 한다. 밥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다. 밥을 나누는 행위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 신념이 개입될 필요가 없다. 나누는 것, 그 자체가 선한 행위다. 최 목사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밥 퍼주는 일은 이어나갈 것이라 했다.

  이런 선의의 봉사에는 후원자가 나선다. 적게는 몇 천원부터 많게는 몇 억 원까지 헌금을 낸다 한다. 최일도 목사가 이끄는 밥퍼나눔운동본부도 이런 헌금으로 이어가고 있다. 참 거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먹은 밥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마움이 깃들어 있을까. 성금을 내어 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숨어있고, 운영하는 단체의 사랑이 담겨있다.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조리하고 나누어주는 정성이 있기에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흐뭇한 체험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 밥차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약력> 전주사범학교,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대한문학> 수필 등단,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은빛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논두렁 밭두렁> 외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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