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vs '고산자'…다른 듯 닮은 영화
'밀정' vs '고산자'…다른 듯 닮은 영화
  • 연합뉴스
  • 승인 2016.08.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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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개성 뚜렷하지만 뜨거운 결말 공통점

오는 9월 7일 동시에 개봉하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

두 영화는 김 감독과 강 감독의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확연히 보여주는 영화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등을 그린 영화. '고산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꾼' 김정호의 알려지지 않은 삶은 다뤘다.

'밀정'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김지운 감독답게 세련된 영상과 절제된 감정 등이 여운으로 남는 영화다. 폭발하는 긴장감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을 좇아가면서 마지막에 묵직한 감동을 준다.

'고산자'는 '실미도', '전설의 주먹'에서 봤듯이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강 감독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김정호를 길잡이 삼아 그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팔도의 아름다움도, 김정호라는 인물의 우직함과 강직함도 저절로 느끼게 된다.

스타일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닮은 면도 있다. 둘 다 실존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래서 두 주연배우의 활약이 돋보이는 점, 시작의 온도는 다르지만 결국 뜨거운 영화로 끝난다는 점 등이다.

◇ 역사 속 실존인물 다뤄

'밀정' 속 주인공인 이정출(송강호)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인 황옥을 모티브로 했다.

황옥은 1920년에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파 암살의 지령을 받고 독립무장단체 의열단이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는 것을 돕다가 발각돼 체포된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황옥이 의열단의 2차 거사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심은 밀정이었다는 설과 일본 경찰을 가장한 의열단원이었다는 설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리고 실제 그가 밀정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있다.

'밀정'에서는 실존인물인 의열단장 김원봉(이병헌)도 극 중 정채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실존인물을 다룬 만큼 감독의 부담도 컸다. 김 감독은 "실명을 직접 사용하기가 부담됐다"면서 "실명을 사용해 신뢰감, 사실감을 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배우가 만들어내는 테크닉과 재능을 관객들이 즐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뽕'(애국심과 히로뽕(필로폰)을 합성한 신조어)처럼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삶을 다뤘지만,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이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사료에는 김정호의 출생과 사망연도조차 1804년과 1866년으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을 정도다.

특히 김정호의 업적과 평가가 일제의 식민사관과 연관이 있다는 논란이 강 감독의 부담감을 키웠다.

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겁이 난 부분이 식민사관이었다"며 "식민사관이란 말이 나오면 감독으론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어떤 자료에도 공통으로 나오는 대목, 즉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목판으로 대량으로 찍어서 백성에게 나눠주려 했다는 것과 권력자들과 충돌이 있었을 것이라는 부분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 송강호 vs 차승원

연기 베테랑인 송강호와 차승원이 모두 인생 연기를 펼친 점도 닮았다.

'밀정'에서 송강호는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아 일제와 의열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송강호는 "어느 쪽 편으로 설정하지 않고 연기했다"며 이런 줄타기 연기가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차승원도 '고산자'에서 고산자 김정호 역을 맡아 그의 연기경력에 한 획을 그었다.

김정호가 실존인물이기는 하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탓에 삶이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연기자로서는 실존인물을 상상에 의존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이중의 부담일 수 있다. 그는 "엄청난 무게를 어깨에 지고 연기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미디에서 사극, 드라마, 액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연기자답게 지도 제작에 인생을 바친 김정호를 소탈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로 스크린에 구현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큰 키가 한몫하기도 했다. 꼿꼿하게 서 있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관객들로 하여금 김정호의 굳은 심지를 느끼게 하는 '특수효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 차가운 블루톤 vs 형형색색의 절경

'밀정'과 '고산자'는 화면의 밝기와 색상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밀정'은 차가운 스파이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푸른색 톤을 많이 사용했다. 기차 세트의 경우에도 일반 객실보다 특실의 톤을 더 어둡게 만드는 등 공간 속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구도, 밝기 등을 조절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재연한 영화들을 보면 목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따뜻한 색상이라 다소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그래서 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차가운 색감을 사용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산자'는 화려함 그 자체다.

구름 속에 걷힌 백두산 천지의 영롱함이 스크린에 그대로 전해진다. 합천 황매산의 만개한 철쭉과 북한강의 미끄러질 듯한 빙판, 일몰 풍경이 아름다운 여수 여자만, 그리고 한국의 최남단 섬 마라도까지 알록달록한 풍광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제작진은 이런 풍광을 담기 위해 총 9개월간 1만6천240㎞를 직접 두발로 디뎠다.

◇ 결말은 모두 뜨겁다

두 영화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막판 뜨거운 감정을 끌어 오르게 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실패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며 "그 역사 속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니 비통함과 비장함 그리고 오열과 절규가 저절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차가운 스파이 세계를 그리려고 했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버렸던 젊은이들과 시대의 혼돈 속에서 외줄 타듯 살아갔던 인물들의 고뇌는 결코 식힐 수가 없는 활화산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

'고산자' 역시 "제 나라 백성을 못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와 같은 김정호의 대사를 통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중간중간 '아재개그'같은 유머가 들어있긴 하지만 김정호의 여정이 독도까지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이래도 가슴이 안 뜨거워질래?'라고 밀어붙이는 듯하다.

강 감독은 "너무 각박하고 팍팍한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대동여지도의 위대함과 김정호 선생의 철학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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