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한 도(道)의 세계를 궁구하며
구원한 도(道)의 세계를 궁구하며
  • 김동수
  • 승인 2016.08.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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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1. 곽진구(郭鎭九: 1956-) -

 전북 남원 출생. 원광대학교 한문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현재 남원 서진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1989년 『예술계』와 『우리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함.

  『남원문학』, 『전북문학』 , 『원광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집 『사는 연습』 외 5권을 발간, 그의 시는 불편한 세상과의 화해 속에서 보다 안정되고 구원한 도(道)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발걸음 속엔
  여느 때같이 안부를 당부하는
  아내의 얼굴이 구두끈처럼 조여 있다

  - 중략-

  사는 것이 다 그렇다고
  모든, 살아 있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해야 된다고

  저임 도시락을 먹고 신김치처럼 말하고
  삶의 무게만큼 두 개의 젓가락 사이로
  걸어가는 우리, 등뒤로 돌아서면
  키재기를 한다

  사는 것이 다 그렇다나
  모든, 숨쉬는,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비장한 쉼표를
  찍고 또 찍을까

  -곽진구, 「사는 연습 1」 일부. 『우리문학』 가을호, 1989년

 
  ‘저임 도시락을 먹고 신김치처럼 말하’는 우리네 삶이 비록 비루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실존 앞에 ‘구두끈’을 조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슬픔’과 ‘아픔’의 공간 속에서도 생존의 대열에 동참해야만 하는 화자의 불편한 속내가 그의 시에 불안한 정조를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그의 시는 초기의 불안과 불편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다 차분하게 세상과의 화해 속에 자연과의 합일을 꾀하고 있다.

  우리 집 복실이는 제 집 놓아두고/ 마당 깊은 이웃집 꽃밭에 똥을 싼다/ 주인에게 빗자루꽁지로 터지기 일쑤이면서도/ 그 때가 되면 무언가에 홀려/ 꽃들이 똥을 누는 꽃밭에 몰래 들어가/ 똥을 싼다

  벚꽃들이 우수수 지는 봄날에/ 하얀 벚꽃똥을 맞으며 싸더니/ 날이 더운 요즘은 능소화 빨간 꽃똥이 지는 담벼락 아래에서/ 자세를 바꾸어 가며 똥을 싼다/ 오늘은 채송화 앞에서/ 내일은 아마 복숭아꽃 앞에서 똥을 살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좋아하는 꽃 속에서 똥을 누워본 일이 없다

  -「차이」일부, 『원광문학』 8호, 2006년
 

  ‘개’와 ‘나’와의 차이가 극명하다. ‘꽃을 좋아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건만/ 저 놈은 꽃과 한 몸이 되어 천복을 누리고/ 나는 꽃과 한 몸이 되지 못해/ - 자유를 알지 못한다’( 「차이」 후반부)고 자탄한다. ‘누리는 자’와 ‘누리지 못하는 자’와의 차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벌 받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과 돌팍에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그러하듯/ 나는 펑펑 아픈 시를 피워 내며 벌 받고 있다’(「오래된 수업」 일부) 고, 시작(詩作)의 고통과 기쁨을 반어적 역설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문명과 제도와 관습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하는 반문명· 반제도적 자연관을 추구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의 시는 우주와의 합일을 궁구하면서 그 속에서 생의 아름다움을 찾아 오늘도 사무사(思無邪)의 경계를 넘보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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